호흡을 가다듬자

아곤
4 min readJan 3, 2019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곤 합니다. 집중이 되지 않아 성과는 없는데 마음만 조급하니까 짜증이 나기도 하지요. 그럴 때는 한 호흡만 더 느리게 한 템포만 더 느리게 밟는게 필요하기도 한 법이지요. 오늘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한 템포만 느리게 기지게를 켜는 그런 날이요.

아침에 굉장히 늦게까지 잠을 잤습니다. 먼저 일어났다가 다시 누워서 자고 일어나니 벌써 10시가 넘었네요. 출근을 하니 거의 12시 가까이 되어서 점심은 그냥 먹지 않았습니다.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았지요. 그래도 어제처럼 몸이 쑤시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플라톤을 읽을 때는 전에 봤던 내용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제가 플라톤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건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국가라고 하면 철학책이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저에게는 그냥 한 권의 동화책처럼 읽히곤 하니까요.

소크라테스가 집에 가려는데 누군가 그의 옷을 잡아 끕니다. 밤에 파티가 있으니까 놀고 가라고 하지요. 소크라테스가 싫다고 하니 절대 안 보내주겠다고 뗑깡을 부립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남게 되지요. 그러다가 오랜 친구인 케팔로스를 만납니다. 그에게 노년의 삶은 어떤지 묻게되죠. 그러다가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집니다. “정의는 빚진 걸 갚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게 정의가 맞을까요?” 그 조그만 질문으로 10권에 달하는 책이 시작하는 겁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의아하게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곳곳에는 정말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말들이 숨어있죠. 우리는 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정의로운 것보다 현실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이 국가의 시작입니다. 과연 정의로운게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지 그저 강자의 이익을 정의라고 부르는 건 아닌지 그런 질문에서 대화가 시작됩니다.

1권의 결론은 정의가 좋은 건 맞는 것 같은데 도데체 정의가 뭔지는 모르겠다 입니다. 아마 제가 이 책을 매번 읽는 이유도 같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도데체 정의가 뭔지 모르겠거든요. 살다보면 좀 더 알게 될까요?

오늘은 4화의 스토리 보드를 완성했습니다. 몇 시간씩 걸려서 스크립트를 완성하고 이미지도 다 찾았지요. 그래서 팀원들에게 올렸습니다. 근데 결과는 까였습니다. 너무 포괄적인 예기라서 재미가 있지도 애플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하! 이런 정보를 주지도 못한다고 하는군요. 금요일에 만나서 다시 전략 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아….

아무래도 오늘은 정말 느리게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의 성과라면 Free Software & Open Source Movement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드디어 끝냈습니다. 벌써 몇 주째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다가 이제야 다 본 겁니다.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의 예기를 듣고 있자니 제가 개발자가 아닌게 가장 슬펐습니다.

Free Software와 Open Source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최초로 Free Software가 시작되었을 때는 문자 그대로 모두가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낙원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Linus가 출시되고 여기서 파생된 상업적인 시스템이 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업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책이 Open Source Code 움직임이었습니다. 기존에 Free Software 정신을 옹호한 사람들은 상업화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지요.

저도 가끔 상업화 혹은 main stream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세상을 꿈꿉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공정한 그리고 모두가 서로를 보듬고 사는 세상을 말이지요. 그런데 저는 과연 지금 그런 이상을 실천하고 있을까요? 인간이 이성적으로 자애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계속 선택을 하며 살아가겠지요. 지금 당장은 앞에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저는 아직 상업화를 선택한 사람도 이상을 쫓은 사람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선택이 누군가의 입장을 좀 더 대변하는 날이 올테지요. 그 때까지 영상이나 열심히 만들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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