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영국은 격동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15세기와 16세기에 걸친 귀족간의 영토 분쟁과 카톨릭, 영국 성공회, 청교도의 종교 분쟁, 그리고 왕가 세력간의 정치 분쟁 속에서 갈등은 극에 달했죠. 그러던 중 신세계(New World)는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제시된 셈이었으니까요. 그곳에는 대서양의 너비만큼이나 무수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항해에 나섰습니다. 1620년 30명의 항해사와 102명의 승객을 실은 메이플라워호는 지금의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역에 정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신세계, 아메리카가 탄생했죠.
이처럼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항해했습니다. 그리고 무수한 실패가 있었죠. 여기에는 디지털이 만든 가상 세계(Virtual World)로의 진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6년, 공개키 암호학(Public Key Cryptography)이 발표되면서 개인이 디지털 세상으로 나갈 길이 생겼습니다. 이전까지는 정부(혹은 기관)만 정보를 보호할 수 있었지만 개인도 디지털 세계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문을 잠글 수 있는 열쇠(key)가 주어졌죠. 공개키 암호학의 발전은 군사 기밀로만 다루어지던 인트라넷(인터넷의 전신)을 만인에게 공유할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했고 개인용 컴퓨터(PC)의 발전과 함께 디지털 세계로의 진출을 가속화했습니다.
디지털 세계를 향한 꿈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가 메타버스(Metaverse)입니다. 메타버스는 상위를 뜻하는 메타(μετα)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죠. 원래 1992년 발표된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라는 공상과학 소설에서 처음 썼는데 웹과 게임 개발자 사이에서 회자되며 구체적인 형태가 발전되었습니다. 최초의 메타버스 프로젝트인 더 메타버스(The Metaverse)는 1993년 텍스트 기반 가상 현실 게임인 MOO로 구현되었습니다. 이를 구동하기 위한 기계도 따로 있었죠. 하지만 이들은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구동을 위한 서버 구축이 어려웠고 함께할 유저도 없었죠. 10세기 아메리카에 처음 상륙한 바이킹처럼 이들은 척박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합니다.
이후 메타버스 계승자는 게임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2003년 센프란시스코에 소재한 린든랩(Linden Lab)에서 개발한 쎄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3D 그래픽 기반의 메타버스 환경을 제공합니다. 쎄컨드라이프의 유저는 레지던트(Resident)로서 자신의 메타버스 캐릭터인 아바타(Avatar)를 만들어 활동합니다. 쎄컨라이프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현실가 연결된 지형을 자랑하는데 현실 세계에는 심즈(Sims)라 불리우는 서버 호스팅 기계가 있습니다. 하나의 심즈는 가상 세계에서 256 m2에 달하는 지역(Region)을 담당합니다. 현실 세계 서버 숫자에 따라 가상 세계의 영토가 증가하는 거죠.
유저는 자신의 인벤토리(Inventory)에서 머리 색, 피부 톤과 같은 신체와 옷과 같은 아이템(Item)을 바꿀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에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짓거나 애니메이션을 부여해 유저 생성 콘텐츠(User Generated Contents)를 만들고 이를 사고 팔 수 있습니다. 거래는 린든 달러(Linden Dollar)라는 자체 화폐를 이용하고 환전은 린든X(LindenX)라는 환전소(Exchange)에서 하죠. 달러와 린든 달러의 환율은 변동성을 가지며 유저는 언제든 환전을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판단에 따라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로블록스(Roblox)를 포함한 다양한 메타버스 게임이 쎄컨라이프의 환경과 경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메타버스 경제 시스템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유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죠. 엄밀히 말하면 “디지털 소유권(Digital Ownership)”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행 법상 객체(Object)의 소유권을 인정 받으려면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물건이어야 하는데 디지털 정보(Information)는 물건도 아니거니와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죠. 데이터와 개인 정보 보호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데이터의 소유권을 보장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건 사실이지만 디지털 소유권을 보장할 법적인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 따지면 메타버스의 정체성은 현실 세계에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이지요.
NFT는 현행 법에서 규정하는 디지털 소유권에 정면으로 대항합니다. 불가역적으로 검증 가능한 블록체인 상에 등재된 NFT의 소유권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죠. 2018년 11월 크립토키티를 개발한 데퍼랩스는 캐나다의 변호사, 법학자들과 함께 NFT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규명하는 “NFT License”를 발표했습니다. 자신의 이권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느린 사법부를 대신해 자체 기준을 마련한 것이지요. 제도권에서 블록체인 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얼마나 인정해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어쩌면 “대표없는 과세는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를 외치며 영국 왕실과 전쟁을 선포했던 미국의 선각자처럼 대대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이러한 시류 속에 발전하고 있는 블록체인 메타버스는 이전과 형태가 같아도 완벽히 다른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스노우에서 개발한 제페토와 협업하고 있는 더 샌드박스게임(The Sandbox Game)의 경우만 봐도 게임 자체는 쎄컨라이프와 크게 다를게 없습니다. 기술이 발전했으니 3D 물리 엔진이 더 발전한 부분은 있겠지만 게임 내용 자체는 땅사서 아이템 거래하고 사용자 생성 콘텐츠 즐기는 거니까요. 하지만 자산(Asset)의 함의가 차이를 보입니다. 쎄컨라이프의 아이템이 아이들의 딱지와 구슬이었다면 더 샌드박스의 자산은 어른들의 월급이니까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죠.
콘텐츠를 통해 블록체인 메타버스의 현실성을 높이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이디리움 최초의 메타버스 프로젝트인 Decentraland는 메타버스에서 여는 다양한 이벤트 개최하여 유저의 참여도를 높입니다. 이벤트에는 연사를 초청하여 개최하는 학회도 있고 NFT 아트워크를 전시하는 전시회, 음악 파티, 카지노 나이트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행사도 있죠. 유저는 자신의 캐릭터로 로그인할 수도 있고 아이디가 없는 사람은 게스트(Guest)로 이벤트를 둘러볼 수도 있습니다. 이벤트는 실시간(Real Time)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시간에 늦으면 참여가 어렵습니다. 기존 게임이었다면 말도 안될 요소였겠지만 가상과 현실을 오가는 메타버스의 특성을 봤을 때는 오히려 이벤트에 시간에 맞춰 참여할 유인과 현실성을 더하는 효과를 부여합니다.
1773년 영국 정부에서 차 과세법(Tea Act)을 통과시켰을 때 미국 식민지의 시민은 분노했습니다. 이미 1765년 통과된 우표 과세법(Stamp Act)와 식민지의 무역과 재산 축적을 견제하기 위한 타운센드 법(Townshend Act)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으니까요. 차 무역을 생계로 삼고 있던 보스턴의 시민들은 영국의 과세에 반대하기 위한 정당(Party)을 결성했고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 상선을 파괴함으로서 저항합니다. 이 사건 이후 영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미국의 13개 주(Thirteen Colonies)는 연명을 결성하고 1774년 필라델피아에서 제 1회 대륙회의(The First Continental Congress)를 개최합니다. 미국 정부(Government)가 출범하게 된거죠.
블록체인 메타버스가 일구고 있는 신세계와 현재 “물리적 현실(Physical Reality)”로 불리우는 구세계와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에서 한 가지 배울 점이 있다면 이권이 걸린 싸움에서 원만한 타결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충돌(Conflict)에 대비해야 합니다. 상호 협력을 통해, 그리고 블록체인의 정당성 증명을 통해 입지를 공고히 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