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아곤
3 min readFeb 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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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사마천

일이 잘 풀리고 바쁠 때는 이런 질문이 들지 않다가 꼭 무언가 막히고 갑갑하게만 느껴질 때면 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딱 하나로 내려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것 사이에서 중요한게 꼭 하나가 아닐수도 있으니까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를 쓴 사마천은 불구자였습니다.
외국 군대에게 투항해 나라를 배신했다고 여겨지는 장수를 옹호하기 위해 왕에게 대들었다가 거세를 당했죠.

사마천은 그 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비록 백세의 세월이 흘러도 저의 수치는 너무나 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아홉 번이나 애가 끊어지는 듯하고 집안에 있으면 망연자실하여 무엇을 잃은 듯하고 집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를 못합니다. 이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줄기를 흘러 옷을 적시지 않는 적이 없습니다.”

사마천이 이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사마천은 살아남았습니다. 그에게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사마천의 아버지는 한나라에 역사를 기록하는 태사공이라는 직책에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아들인 사마천에게 자신이 다 쓰지 못한 역사서를 꼭 대신 써줄 것을 부탁합니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받아 역사서를 완성하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중국 최대의 역사서, “사기”입니다.

부탁한다는데 안한다고 하기도 뭐 했을 것 같군요

사마천은 말했습니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터럭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니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입니다”

“고통을 감내하고 구차하게 더러운 치욕 속에 있으면서도 마다지 않는 까닭은 제 마음 속에 다 드러내지 못한 바가 있어,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경우에 후세에 문채(文彩)가 드러나지 않을 것을 한스러이 여겨서입니다.”

과연 저도 사마천처럼 살아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지 한번 고민해보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저에게 주어진 소명은 막연하게만 보입니다. 그걸 이룰 실력이 없어서 아직은 허황되고 붕뜬 꿈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문장으로든 실상으로든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서려 합니다.

가벼운 죽음은 두렵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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