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벨리의 차세대 인터넷 경쟁
2020년 4월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 트레비스 스콧(Travis Scott)은 온라인 게임 플랫폼 포트나이트(Fortnite)에서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포트나이트의 화려한 그래픽과 스콧의 몽환적인 음악이 어우러진 콘서트에는 무려 1200만명의 인파가 몰렸죠.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콘서트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콧의 콘서트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덩달아 포트나잇과 같은 온라인 가상 환경을 통칭하는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죠. 워싱턴 포스트는 실리콘 밸리의 메타버스 개발 현황을 조명하며 메타버스가 미래의 인터넷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실리콘 벨리 기업이 메타버스를 연구한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닙니다. 2015년 마이크로소프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헤드셋인 홀로렌즈(Hololens 1)를 출시했습니다. 홀로렌즈를 이용하면 가상 이미지를 현실에 투사할 수 있죠. 윈도우 10이 설치되어 있어 PC나 다른 모바일 기기와의 연동도 가능합니다. 이후 6년이 지나 마이크로소프는 홀로렌즈 2와 혼합 현실(Mixed Reality, MR)을 위한 플랫폼인 메쉬(Mesh)를 출시했습니다. 메쉬는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애저(Azure) 위에 홀로렌즈, VR 기기, PC, 모바일 접속이 가능한 혼합 현실 메타버스를 환경을 제공합니다. 현실과 디지털을 교차하는 하드웨어 기기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기반을 완성한 상태인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기업은 페이스북입니다. 페이스북은 2016년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VR) 헤드셋인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를 출시했습니다. 이후 오큘러스 퀘스트 2를 출시하고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 환경인 호라이즌(Horizon) 베타 서비스 운영을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죠.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인터뷰에서 호라이즌을 통해 메타버스의 사용자를 늘리는데 집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장 홀로렌즈와 같은 현실 기반 환경을 구축하기 보다는 가상 현실을 교두보로 삼아 메타버스 사용자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아니 잠깐. 도데체 메타버스가 뭔데?
2006년 미국의 비영리 조직인 메타버스 로드맵(Metaverse Roadmap)은 메타버스의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가상 세계(Virtual World), 미러 월드(Mirror World),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으로 나뉩니다.
1. 가상 세계(VW)
제페토는 3D 가상 케릭터인 아바타로 활동하는 가상 세계를 제공합니다. 제페토는 사진앱인 스노우(Snow)에서 사진에 가상 캐릭터를 입히는 기능이었는데 인기가 높아지자 자체적인 앱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현재 제페토는 전세계 2억 명의 사용자가 이용하고 있으며 구찌와 같은 패션 커머스 업체 뿐 아니라 CU와 같은 오프라인 기반 상권과도 협업하고 있습니다.
요즘 메타버스라고 하면 대부분 가상 세계 메타버스를 의미합니다. 앞서 본 포트나이트나 최근 상장한 로블록스도 모두 가상 세계 기반 메타버스니까요.
2. 미러 월드(MW)
2017년 구글은 새로운 구글 어스(Google Earth)의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현실의 지형을 본따 만들어진 구글 어스의 영상을 보면 이게 실제 세계인지 가상 세계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구글 어스와 같이 실제 세계를 모델링한 가상 세계를 미러 월드라고 부릅니다.
현재 미러월드의 주요 사용처는 네비게이션 입니다. GPS로 위치를 추적하고 미러월드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지요.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에서 미러월드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가상 세계 메타버스에 미러월드로 구현한 현실 기반 이미지를 입혀 지형의 현실감을 높일 수도 있죠.
3. 증강 현실(AR)
2016년 포켓몬고가 처음 나왔을 때 전세계는 열광했습니다. 현실에서 포켓몬을 수집할 수 있게 되자 한국의 비무장지대에 출몰하는 희귀 포켓몬을 잡으러 관광객이 몰리는 진풍경도 연출됐죠. 포켓몬고는 우리에게 증강 현실이 무엇인지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이후 현실에서 가상 이미지를 구현하는 증강 현실(AR), 혼합 현실(MR), 확장 현실(XR)에 관심이 쏠렸죠. 하지만 포켓몬고만큼 선풍적인 제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지부터 거리 측정,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환경까지 신경써야할 기술적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실리콘 벨리의 최고 기업들은 증강 현실의 가능성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2020년 애플은 AR 글래스 발매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비록 발매가 미뤄졌지만 애플은 AR 글래스 상용화를 위해 자율주행 자동차 거리 측정 기술인 라이더(LIDAR)와 AR 환경에 맞는 전용칩을 개발하고 있죠. 하지만 홀로렌즈2의 가격이 3천 달러인 것을 감안 했을 때 애플의 제품 가격이 얼마일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글래스와 같은 상용품이 아닌 자동차와 같은 고가품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죠.
가격과 기술 구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AR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현실성" 때문입니다. VR은 아무리 정교하게 구현해도 가상 세계에 국한됩니다. 게임이 아무리 재밌어도 어머니가 등짝 스메싱을 하시면 게임을 꺼야하듯 우리는 가상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망라하는 세계, 더 나은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접속을 끊을 필요가 없는 혼연일체의 세계가 필요하죠. AR은 이를 위한 기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4. 라이프로깅(LL)
2020년 싸이월드가 서비스 중지를 선언했을 때 유저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소중한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람도 있고 흑역사가 삭제에 안도한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한 가지 공통점은 존재합니다. 싸이월드의 사진과 글이 “나"를 표현하고 있다는 인식이지요. 이처럼 현실의 나를 반영한 디지털 “정체성"을 형성하는 행위를 라이프로깅이라고 부릅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뿐 아니라 브런치나 미디엄, 심지어 카톡에서 이뤄지고 있는 행위죠.
라이프로깅의 핵심은 정체성의 연결입니다. 현실의 데이터로 만든 디지털 자아는 현실의 나와는 분명 다른 존재입니다. 열심히 보정하고 검열해서 올린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에 더 가깝죠. 그래도 가끔은 디지털 자아가 나를 더 잘 대변해 주기도 합니다. 카톡 프로파일에 사진이 없어진 걸 보고 친구들이 “너 괜찮아"하고 묻는 걸 보면 말이죠. 현실의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디지털 자아, 라이프로깅 메타버스는 개인의 정체성을 얼마나 납득 가능한 방법으로 담아주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가상 세계는 현실과는 다른 세계, 다른 정체성 제공에 집중합니다. 메타버스의 아바타는 그 세계 안에서 활동하기 위한 캐릭터니까요. 이러한 세계의 단절은 현실을 탈피하고 싶어하는 게이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릅니다. 정체성이 연결되면 게임 안에서의 행동이 현실의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머리 식히려고 하는 게임에서까지 남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라이프로깅에도 대체할 수 없는 수요가 존재합니다. 바람의 나라를 비롯한 MMORPG가 PC방을 점령하고 있던 90년대 후반에도 싸이월드가 당당히 정상을 차지한 걸 보면 말이죠. 다음의 라이프로깅 메타버스가 VR 기반의 가상 세계에 있을지 AR 기반의 현실에 기반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핵심은 어떻게 정체성을 연결시킬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죠.
당신이 메타버스를 알아야 하는 진짜 이유
2021년 6월 애플의 CEO 팀 쿡은 9월부터 1주일에 3일 오피스에 출근할 것을 권고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애플은 2017년부터 1.46km2에 달하는 거대한 오피스 건물인 애플 파크에서 일하고 있죠. 모르긴 몰라도 건물만 봤을 때는 애플파크보다 나은 환경을 찾기 힘들 겁니다. 그런데 애플의 직원 80명이 팀 쿡의 결정에 반대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코로나 전에도 사무실 위치와 지역별 시차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코로나를 계기로 발전한 원격 근무 시스템을 이용해 재택 근무를 정착해서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죠.
코로나 이후 원격 근무 여부의 문제는 애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거리두기가 조정되는 시점에서 대부분의 기업은 이전으로 회귀할지 아니면 새로운 업무 형태를 수용할지 선택하는 기로에 서있죠. 재택/원격 근무의 복지 효과를 모르는 기업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선뜻 이를 택하지 못하는 건 업무의 효율성 때문이죠. 줌(Zoom)으로 대표되는 화상 회의로는 충족할 수 없는, 상호 소통하는 “유기적인 업무 환경"을 구축하는 문제가 남으니까요.
메타버스는 매력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서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은 소통의 효율을 대폭 높여주니까요. 그래서 최근 메타버스의 가장 큰 관심은 가상 오피스 구축에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페이스북도 가상 오피스 구현에 뛰어들고 있죠. 그러나 홀로렌즈나 퀘스트를 오피스로만 쓰기에는 부담스러운게 사실입니다. 하드웨어 기기도 사야 하고 높은 용량에 3D 멀미까지 감수하면서 가상 세계에 접속해야 하니까요.
이 와중에 주목받고 있는게 게더타운(Gathertown)입니다. 게더타운은 가상 환경에서 화상 채팅을 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마인크래프트처럼 맵을 만들면 그 안에 의자나 테이블을 배치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유저가 오면 다중 화상 회의 환경이 열리죠. 가상 공간을 기획해서 접근 권한을 설정만 하면 수백명을 위한 사무실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데스크탑에서 거의 끈김없이 접속할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이죠. 원격 근무 환경 구축이 시급한 상황에서 게더타운은 줌이나 노션처럼 워크스테이션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매김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게더타운이 가상 오피스 이상의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메타버스가 가상 세계의 그래픽에 좌우되는게 아니라는 사실이죠. 기술이나 화질은 제품의 본질이 아닙니다. 서비스의 가치는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니까요. 다음 메타버스를 고려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표도 서비스의 가치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