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왕을 투표로 뽑은 이유

아곤
4 min readApr 9, 2020

참고: 리비우스 로마사 1권

Rome ne fu[t] pas faite toute en un jour
—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 왕정의 시초,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아직 로마가 나라의 틀도 갖추지 못했던 기원전 800년 경, 로마에는 큰 일이 터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이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이 때 로마의 왕은 로물루스로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었던 전설적인 존재였죠. 그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인 누미토르를 죽이고 왕이 된 아물리우스를 물리치고 여 왕의 자리에 올랐죠. 도중에 형제인 레무스마저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로물루스는 주변 부족을 정복하여 로마의 위세를 드높였고 부족의 연합체 수준에 머물렀던 로마를 하나의 국가로 거듭나게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사도 없이 갑자기 승천해 버리니 남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죠.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원은 차기 왕을 누구로 세워야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로마의 권력구조가 너무 복잡했으니까요. 왕이 된 로물루스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국경을 개방하고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주변국의 부랑민을 로마로 받아들였는데 이는 로마가 성장하는데 큰 공헌을 했죠. 그러나 외국인이 늘어난 만큼 내부 결속은 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왕위 계승 문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외국인 중에서도 가장 큰 골치를 썪인 건 사바니 부족이었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로물루스의 확장 정책은 로마의 인구수를 증가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로마까지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남자이다보니 나라에 여성이 부족했고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로물루스는 통혼을 장려하면서 이웃 국가 여성과의 혼인을 위해 인근 부족에 협조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이는 거절당하고 말죠. 이웃 부족에서는 급격하게 성장하는 로마가 탐탁치 않았으니까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물루스는 하나의 꾀를 냅니다. 로마는 정기적으로 넵투누스(바다의 신 넵튠)을 기리는 축제를 열곤 했습니다. 로마인 뿐만 아니라 인근 부족 사람도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왔죠. 사비니 부족 사람들의 경우는 거의 대부분의 부족민이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축제에 참석했습니다. 축제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로물루스는 비밀리에 어떤 명령을 내립니다. 이 명령을 들은 로마의 모든 젊은이들은 살금살금 축제를 즐기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병아리를 낚아 채듯 그들을 납치해 버립니다. 즐거운 축제는 삽시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물루스만은 흡족한 표정으로 이 모든 사건을 지켜봤죠.

로물루스의 결정은 옳았습니다. 비록 납치라는 방식이 정당한 방법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려울지는 모르겠지만 로마는 인구 성장에는 확실히 도움이 됐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성장이 왕권 강화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의 정체성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인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이 부족했으니까요. 그나마 로물루스가 버티고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갑자기 그마저 사라지고 나니 로마 출신 귀족으로 결성된 원로원의 고민은 깊어만 갔죠.

원로원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은 외국인이 왕이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토박이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원에게는 귀족의 이익이 가장 중요했고 외국인이 왕이 되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입안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가난한 평민과 외국인의 입김이 이미 세진 상황에서 자신들 마음대로 왕을 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내세운 것이 투표를 통한 왕의 비준안이었습니다. 먼저 평민이 투표를 통해 왕을 선출하면 원로원이 이를 비준해야 왕으로 선출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었지요. 명목상으로는 평민에게 권력을 주면서도 실질적인 결제 권한은 자신들이 갖기 위한 술책이었죠. 그리하여 왕을 선출하는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투표로 선출된 최초의 왕은 누마였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사바니 출신으로 로마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워낙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원로원으로서는 그를 막을 명분이 부족했죠. 다행히 누마는 왕으로서 평화로운 나라를 만듭니다. 로물루스가 정복 전쟁과 확장에 치중했다면 누마는 종교를 정비하고 내실을 다짐으로써 로마의 시스템을 체계화하는데 집중했죠. 누마 이후에도 로마는 계속 투표로 왕을 뽑았습니다. 로마가 공화정으로 전환한 기원전 510년 전까지 모든 왕이 투표로 선출되었죠. 그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을 정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투표로 왕을 선출하는 제도는 평민의 권력 상승을 가속화했습니다. 로마는 성장하기 위해 귀족이 평민으로 구성된 시민군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형태로 성장했고 이는 평민의 권력 상장의 이유가 되었죠. 이 모든 시작은 로물루스의 승천이었을 것입니다. 전지적인 인물이 사라짐으로서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 제도가 아닌 투표를 통한 점진적인 시민 권력의 성장이 가능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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