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돈의 가치는 무엇일까?

아곤
10 min readApr 20, 2018

이번 포스팅은 매주 토요일에 진행하고 있는 경제학 스터디 모임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4월 14일 토요일에는 Milton Friedman의 Money Mischief: Episodes in Monetary History(한국어 번역: 화폐경제학) 1장과 2장을 읽고 토의를 진행했습니다. 본 포스팅에 포함된 페이지는 Harvest Book에서 출판한 책의 영어를 필자가 번역하여 작성하였습니다.(페지지 번호는 1994년 출판본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천원의 가치를 묻는다면 아마 많은 분들이 “천원의 가치가 천원이지 뭔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라고 대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천원으로 문방구에서 펜을 사거나 편의점에서 과자 혹은 아이스크림을 사서 제게 천원의 구매력을 증명하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주장은 천원이 가진 가치는 그 천원으로 살 수 있는 재화의 구매력과 동등하다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석유값이 상승하면 펜의 생산 원가가 증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에 전쟁이 나서 석유 값이 폭등 했더라도 문방구 직원이 그 소식이 나온 날 바로 펜의 가격을 올려 받지는 않습니다. 석유 가격 상승이 펜 가격 상승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또한 제가 미국에 간다고 해서 원화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Walmart에서 펜을 계산할 때 달러가 아닌 원화를 쥐어준다면 천원짜리가 아닌 만원 짜리를 내보인다고 해도 미국 계산원은 제게 펜 대신에 나가는 길을 인도해 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제가 가진 천원의 가치는 시기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변동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천원짜리 지폐로 왜 내가 펜을 살 수 있는지 한번쯤 의문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펜의 가격이 천원인 건 펜을 생산하기 위해 들어간 원료 자원과 펜 공장을 돌리기 위해 들어간 노동력 또 공장에서 문방구를 거쳐 저에게 이 물건을 팔기까지 펜을 실어 나른 사람들의 수고를 더한 가격이라고 어느 정도 합리화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 앞에 놓인 돈은 아마도 조폐공사에서 언젠가 내린 정책에 따라 생산된 화폐가 제 손까지 흘러 들어오게 된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 종이를 찍어내는데 들어간 비용을 고려해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사용하는 펜의 가치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제 천원의 가치는 어디서 흘러오게 된 것일까요?

프리드먼은 화폐가 가치를 가지게 된 근원에 대해 설명함에 있어 Yap 섬에서 사용했던 돌 화폐의 예시를 듭니다.(p.3~5) Yap섬에서는 fei라는 이름의 단위로 돌 화폐를 사용했습니다.(p.3) 이 돌은 섬에서는 4백마일 떨어진 곳에서나 찾을 수 있는 희귀한 돌을 언젠가 원주민이 가져와서 섬에서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p.4) 이 화폐의 가장 재미난 특성은 물리적으로 fei를 소유하고 있지 않아도 그 소유권이 인정되었다는 것입니다. (p.4) 예를 들어 한 가족의 경우 그 마을의 그 아무도 fei의 소유권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 아무도 그 가족이 소유한 fei를 본 경험은 없었습니다.(p.4) 그 이유는 아주 오래 전에 이 fei를 들여왔던 가족의 조상이 폭풍우에 휩쓸려 fei가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p.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모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에 그 가족은 마을에서 부유한 가족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p.4)

이 일화에서 유추할 수 있는 화폐의 통용 조건은 3가지 입니다.
1. 희소성: Yap 섬에서 fei가 화폐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었던 건 fei라는 돌이 Yap에서 무한정으로 발견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수량이 한정된 희소한 물건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소성은 측정가능한 형태로 개인의 소유권을 정립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화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2. 기록 가능성: 소유권은 물리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Yap의 사람들은 fei의 소유권 이전을 어떠한 형태로 기록 혹은 구전했을 것이고 이러한 기록이 장부 형태로 보존될 수 있다면 화폐로 통용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3. 화폐를 인정할 네트워크: 내가 아무리 희소한 돌덩이를 가지고 있어도 그 돌을 화폐로 인정할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제가 가진 돌덩이는 그냥 희귀한 돌덩이입니다. Fei는 Fei를 인정하는 Yap 주민들 사이에서만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두고 야만적인 문명이 가진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특히 명확한 물리적 가치 이전이 발생하기 않고도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독일은 Yap을 점령한 후 원주민에게 도로 공사를 시키기 위해 이러한 fei의 성격을 악용하였습니다.(p.5) 독일인은 섬 곳곳에 있는 fei에 검은 색 십자가를 그려 원주민에게 공사에 참여해서 벌금을 내지 않는 한 더 이상 해당 fei를 사용할 수 없다고 엄포하였습니다.(p.5) 이 때문에 불쌍한 원주민들은 독일의 식민 통치에 따라 도로 공사에 참여했고 독일인들이 검은 십자가를 지우자 자신의 fei를 다시 돌려받은 데에 대해 기뻐했다고 합니다.(p.5)

하지만 프리드먼은 문명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진 소유권에 대한 개념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도 물리적 가치가 실제로 이전하지 않아도 장부에 기입된 소유권자가 바뀌면 가치가 이전 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드먼은 1933년 미국을 예시로 듭니다. (p.5) 미국은 1933년 달러의 금태환 가격을 수정하는데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해 연방 준비 은행에 상당량의 자국 자산을 달러에서 금으로 환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p.6) 하지만 두 정부는 금을 실어 나르는데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연방 준비 은행은 금고에 있던 일부의 금의 소유권을 프랑스 은행으로 바꾸는 것으로 거래를 처리합니다.(p.6) 즉 금고에 붙어 있는 이름표만 바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뉴스를 통해 “금 손실”로 보도되면서 미국 경제 아니 세계 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입습니다.(p.6)

이에 대해 프리드먼은 돈 문제에 있어서 매우 주요한 요소는 돈이 보여지는 환상과 “신화”(p.7)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체계에서 주장하는 돈은 실질적 가치가 있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당장 제가 천 원을 들고 가면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누군가는 제 천원의 가치를 인정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밀턴 프리드먼의 말처럼 이 초록색의 종이 쪼가리(달러)가 가치가 있는 건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p.10)입니다. 그리고 화폐의 통용 조건이 충족되는 한 화폐는 그 어떠한 형태로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즉 현재 통용되고 있는 원화와 달러의 국가 신용화폐가 되었든 Yap에서 사용하는 돌 화폐가 되었든 고대부터 주조되온 금화 혹은 은화가 되었든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의 미국 담배(p.13)이 되었든 그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재미있는 의문점은 화폐의 구매력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아까 천 원의 예에서 잠시 설명 드렸다시피 제가 가진 천 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재화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동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모든 재화의 가치가 수요와 공급에 의해 변하듯이 화폐도 수요와 공급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화폐의 공급은 그 희소성 때문에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더라도 일개 경제 주체인 저나 여러분이 여기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화폐의 공급량은 화폐 권위자가 정하는 데로 따라가기 때문입니다.(p.17) 실제로 현재 연방 준비 은행에서 화폐를 결정하는 사람은 각 연방 준비 은행장 12명과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연방 준비 통제자 7인입니다.(p.19) 이 사람들은 투표를 비롯한 국민의 의사결정과는 무관하게 선정되므로 여기에 대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화폐 구매력을 결정하는데 우리가 관여하는 건 수요의 측면밖에 없습니다. 화폐에 대한 수요는 사람들이 해당 화폐를 소유할 유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프리드먼은 화폐를 소유를 결정하는 유인을 2가지로 보고 있습니다.(p.22~27)
1. 유용성: 복잡한 경제 구도에서 사람들은 교환의 목적으로 화폐를 소유할 유인이 있습니다.(p.22) 아마 여기서 파생되는 개념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화폐가 가지는 교환의 가치일 것입니다. 물론 사회가 복잡하면 다양한 형태의 재산이 존재하기 때문에 교환 가능한 형태의 재산이 화폐만 있는 건 아닐 테지만 유사시에 사용하기에는 모든 곳에서 통용이 가능한 화폐가 가장 적합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p.22) 이 때문에 가치의 저장의 수단으로서도 충분히 유용합니다.
2. 비용: 화폐의 소유에도 비용이 듭니다. 화폐도 다른 모든 재화와 마찬가지로 다른 가치와 대비해서 상대적 가치를 가집니다. 또한 화폐의 가치 역시 공급량에 따라 그 가치가 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명목 가치와 실제 가치입니다.(p.24) 예를 들어 채권에 대해 매년 10%의 수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가격 상승률이 6%라고 한다면 제가 연간 해당 채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4%에 지나지 않습니다. (p.24)

개인은 아마 이 유용성과 비용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화폐 보유량을 결정할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이 이 모든 요소를 자의로 결정할 수 없는 건 공급에 따라 화폐의 유용성과 비용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수익은 총 2만 달러이고 보유한 현금은 2천 달러(소득의 10%)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꼭 최소한 2천 달러(소득의 10%)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고 싶어하며 그 이상의 현금은 물건을 사는데 사용하고자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람이 길을 가다가 2천 달러를 주웠습니다. 이 행운의 사나이는 2천 달러로 평소에 사고 싶었던 맥북을 질렀습니다. 즉 이 사람에게 현금을 더 보유해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았다면 시간에 따라 2천 달러를 소비하여 현금 보유량을 이전 수준(자신의 소득의 10%)으로 되돌릴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이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런 횡재를 겪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p 29, 헬리콥터의 예시)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의 소득 수준이 2만 달러이고 2천 달러를 소유하고 있을 때 모든 사람에게 2천 달러가 주어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때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현금 보유량(소득 수준의 10%)를 제외한 나머지 현금은 사용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회 전체를 보았을 때 돈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기 때문에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 됩니다.(p.30~31) 이 때 통화량의 증가(달러라는 지폐의 증가)가 사회의 가치(재화 혹은 서비스)의 증가를 의미하는 건 아니므로 통화 유입량의 증가로 달러로 표시된 모든 명목 가치는 상승할 것입니다.(p.31) 즉 프리드먼이 David Hume을 인용한 것처럼 “화폐량의 증가는 노동과 상품 가격의 증가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증가는 산업을 활성화 시켜 어떠한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가격이 안정화되면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p.41)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만약 이러한 통화 유입량의 증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지고 소득이 일정하게 분배된다고 가정했을 때 개인의 명목 화폐 보유량도 증가하게 됩니다. (p.34, 헬리콥터에서 돈이 계속 떨어진다면) 예를 들어 소득이 2만 달러였던 사람의 소득이 3만 달러로 증가한다면 그 사람이 보유하는 화폐의 양도 2천 달러에서 3천 달러(소득의 10%)로 증가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소득이 증가했다면 그 사람의 소득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증가했더라도 구매력은 증가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화폐의 증가에 따라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도 시간에 따라 증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개인은 자신이 예상하는 화폐 증가량에 따라 화폐 보유의 유용성과 비용을 계산하고 보유량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산 방법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이 단기간에 적정 수치로 수렴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가진 돈의 가치는 우선 그 돈이 통용 된다는 전제 하에서 시장의 전체 통화량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개인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화폐를 얼마나 보유할 지 정할 수 있지만 결국은 전체 통화 정책에 의해 명목 화폐 보유량이 변화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프리드먼은 통화 정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책 곳곳에서 많은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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