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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삼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미래의 일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위협을 분산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는 격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가장 당연한 말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2018년 11월 24일 아현지사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인터넷 사용이 중단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KT를 사용하던 핸드폰 사용자부터 가정 통신망까지 모두 먹통이 되었지요. 특히 신용카드 결제기 사용이 중단되면서 인근 지역의 상공인들은 영업을 못하는 사태가 벌여졌습니다. 말 그대로 통신 대란이 벌어진 거지요.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는 종종 발생했었습니다. 1994년 3월과 2000년 2월에는 종로 기지국에 화재가 나서 통신망이 두절되는 사태가 일어났고 2000년에는 여의도에 화재가 일어나서 증권 거래소를 마비시킬 뻔한 아찔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2003년에는 DDOS 공격으로 인해 KT의 혜화 지사가 마비되버린 사건도 있었지요.
이러한 사고의 근본적인 문제는 네트워크의 구조에 있습니다. 지상 네트워크에 기반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망은 기지국, 단말기, 개인 단말기의 3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지국에서 전송한 데이터가 전선을 거쳐 주거 지역의 단말기로 전달되고 이것이 다시 개인에에 전송되는 중앙화된 하향 방식인 것입니다. 즉 기지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 네트워크가 똑같은 문제를 겪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결국 중앙화된 네트워크는 언제나 중앙화의 실패(single point of failure)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굴을 하나만 파둔 토끼는 사냥꾼이 굴 앞에서 잠복한 사냥꾼을 알고도 피할 수 없듯이 사건 사고 위험을 알고 있더라도 피할 방법이 없는 거지요. 따라서 네트워크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를 분산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오래 전부터 지상에만 한정된 네트워크망을 분산화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최근 엘론 머스크의 Space X는 Falcon X를 쏘아올려 더 저렴하고 광범위한 인공 위성 인터넷망을 약속합니다. 또한 구글이 후원하는 Project Loon은 열기구로 LTE 네트워크망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모두 지금까지 국가에서 후원하는 기업이 독점했던 지상 기반 네트워크망의 대체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 P2P 네트워크망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goTenna의 Mesh입니다. Mesh는 단말기끼리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 환경을 제공하는데 현재 미국에만 10만 개 이상의 단말기가 노드로 운영 중입니다. 문자와 위치 정보만 전송할 수 있다는 기능적 한계가 존재함에도 사람들이 그 안정성을 높이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UN 산하의 국제통신기구(ITU)는 2030년 이후의 인터넷 환경을 예측하는 보고서에서 미래에는 개인 통신망이 더 늘어날 것이라 예측합니다. 따라서 개인과 기업의 사적(private) 네트워크를 포용할 수 있는 연합 네트워크(federated network)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다고 주장합니다. 네트워크 구조가 참여를 허용하는 형태로 발전하지 않는 한 분산화된 네트워크 구축은 실질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분산화가 필요하다는 건 토끼들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미래 네트워크 환경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를 새로이 설계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당연한 일을 당연히 시행해야할 때가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