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future, everybody will be world famous for 15 minutes”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세계적으로 15분간 유명해질 것이다.— Andy Warhol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1968년 급격하게 변화하는 예술 세계를 보며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세계적으로 15분간 유명해질 것이다 "라 예언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과 같은 디지털 소셜 미디어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예언은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었지요. 이처럼 예술의 급격한 변화는 우리의 삶을 뒤바꿔 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뒤바꿀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NFT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어쩌면 NFT가 만들 세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그 어떤 변화보다 더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휘발성이 강했던 팝아트와 달리 NFT는 디지털 세상을 영원히 “구분짓는 능력"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NFT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트코인에서 시작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소유권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8년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논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신뢰에 의존하지 않는 전자 거래 시스템"입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정부, 은행, 혹은 거래소와 같은 제 3자(escrow)에 예탁할 필요 없이 개인 대 개인(peer-to-peer)으로 비트코인을 송금, 입금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체인처럼 서로 연결된 블록(Block)에 거래 데이터가 입력되면 51%이상의 네트워크가 변심하지 않는 이상 불가역적(irreversible)으로 저장됩니다. 비의존성과 불가역성은 개인의 소유권 보장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개인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건 합의 없이 타인의 변심에 의해 나의 소유권이 박탈되지 않을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니까요. 따라서 비트코인은 디지털 소유권을 보장한 최초의 시스템입니다.
비트코인이 발행된 이후 개발자들은 비트코인 시스템을 넘어 다양한 자산에 디지털 소유권을 부여하는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최초의 알트코인(Altcoin)인 네임코인(Namecoin)은 블록체인을 이용하여 .bit으로 끝나는 도메인을 거래하는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비트코인이 아닌 다른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최초의 시스템이 탄생한 것이지요. 이후 마스터코인(Mastercoin) 프로젝트 — 현재 Omni Layer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인데요 — 자산을 예치해서 자신만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형태는 지금 다양한 시스템에서 활용 중인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블록체인에서 블록체인에서 구현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논문이 쓰여진지 5년 후인 2013년 10월, 19세의 나이로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비탈릭 뷰테린은 큰 기대에 부풀어서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그는 최초의 암호화폐 관련 잡지인 비트코인 매거진(Bitcoin Magazine)의 창립 멤버로서 마스터 코인팀을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마스터코인에 감명 받은 비탈릭은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더 나은 솔루션을 제안합니다. 마스터코인팀은 비탈릭의 제안이 그들의 개발 방향성과 다르다는 이유로 제안을 거절하죠. 하지만 비탈릭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막 발아한 스마트 컨트랙트의 아이디어를 한계까지 개발하고 싶었으니까요. 연구를 거듭한 비탈릭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했고 게빈 우드를 비롯해 그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진 여러 개발자와 함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렇게 이더리움이 탄생했습니다.
게빈 우드가 쓴 이더리움 황서에 따르면 이더리움은 “거래에 기반한 스테이트 머신(transaction based state machine)"입니다. 비트코인이 달러와 같은 “화폐(Currency)"를 구현하고자 했다면 이더리움은 컴퓨터와 같은 “범용성 기계(General Purpose Machine)”를 구현하고 있죠. 그래서 이더리움은 화폐인 이더(Ether)를 거래하는 EOA 계좌(EOA Account)외에 코드를 입력할 수 있는 계약 계좌(Contract Account)가 별도로 존재합니다. 계약 계좌에 원하는 코드를 입력하고 EOA 계좌에 필요한 만큼의 금액을 입금해서 실행하면 이더리움 버추얼 머신(EVM)에 자신만의 스마트 컨트랙트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가장 흔한 구현 방식은 토큰입니다. 토큰은 ERC-20 Standard 규격에 따라 작성된 스마트 컨트랙트로서 이더리움을 사용해 자신만의 토큰을 발매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ERC-20은 비탈릭 뷰테린이 직접 작성했는데 이로써 그는 자신이 마스터코인에 제안했던 마스터코인보다 더 나은 화폐 발행법을 실현시켰습니다.
이더리움이 안정된 이후 바야흐로 “대코인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더리움을 이용하면 매우 손쉽게 토큰을 발행할 수 있으니 토큰을 이용한 “코인"이 판을 치기 시작했으니까요. 코인은 지니의 램프처럼 찍어내기만 하면 돈 복사가 가능한 마법의 기술로 추앙 받았습니다. 기술자와 거래소 그리고 충혈된 눈으로 전광판 앞에서 가즈아를 외치는 코린이들의 단말마 속에 블록체인은 타짜들도 한번 거르고 지나갈 시체말(buzzword)로 전락했습니다.
대코인시대 그랜드라인이 코인과 거래소에 형성되던 2017년, 뉴욕에 라바랩스를 운영하던 매트와 존은 기발한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Creative Technologist)로서 그들은 픽셀로 캐릭터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이용해 24 x 24 픽셀의 캐릭터 10000개를 생성했고 캐릭터 이미지의 해시 데이터를 스마트 컨트랙트에 포함시켰습니다. 당시에는 ERC-20 이외의 규격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캐릭터를 “고유하게(Unique)” 발매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프로젝트에 영감을 받은 개발자들은 고유한 정체성을 담은 디지털 자산을 발행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NFT(Non-Fungible Token)이 탄생했습니다.
ERC-721 Non Fungible Token Standard의 핵심은 토큰에 고유한 정체성(ID)를 부여하는데 있습니다. NFT 이전의 토큰은 정체성이 의미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블록 0(혹은 제네시스 블록)에서 생성된 비트코인과 10분 전에 생성된 비트코인은 서로 동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언제 누가 만들었고 누구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일련번호는 있어도 정체성에 따라 고유한 취급을 할 수 있는 기능은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NFT의 탄생은 각각의 디지털 자산을 “구분(distinguish)” 지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후 ERC-1155 Multi Token Standard는 다양한 토큰 타입에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ERC-721이 토큰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했다면 ERC-1155는 “과"를 분류할 수 있는 기능을 주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과에 호랑이와 들고양이, 살쾡이가 있고 들고양이 중에 어제 만난 검은 고양이 네로가 있는 것처럼 ERC-20, ERC-1155, ERC-721을 배합하면 다양한 토큰의 성격을 구분지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구약 시대의 아담과 이브가 동물과 식물에 이름을 붙여 세상을 구분 지었던 것처럼 디지털 세상을 구분지을 수 있는 언어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NFT는 어떤 미래를 불러올까요?
우리의 권능의 끝은 어디이고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까요?
우리는 아직 우리의 한계를 모릅니다. 하지만 상상해볼 수는 있겠죠.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를 그려나갈 언어가 나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