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라는 위대한 우연

참고: 한나 아렌트 혁명론 5–6

“어느 누구도 제대로 형성되었지만 타락한 공동체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형성 당시에는 왜곡되었지만 나중에는 올바르게 된 공동체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많은 사람들이 미국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의 정치적 의의를 권위와 권력이 한 명의 군주와 소수의 귀족에게 집중되어 있는 체계에서 혁명이라는 위대한 사건을 통해 만인이 평등한 민주정으로의 전환이라고 해석합니다.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미국의 혁명 주도 세력이 “대표 없이 과세도 없는" 입법 체계를 확립시킴으로서 군주의 전제적 지위를 대체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렌트는 미국 혁명이 권위를 국민에게 부여하는 체계를 확립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법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상위법이 존재했는데 상위법은 국민과 그 대표자가 설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사실상 미국과 프랑스는 권위를 부여한 신 혹은 절대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입법을 관장하지만 입법 밖에 위치한 절대적 입법자의 위치를 허용합니다. 절대적 입법자는 “하나님에 의해" 부여 받은 절대적 권위에 입각하여 법을 재정합니다. 일종의 신에게서 권위를 위임 받은 절대 군주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리스의 관습법(노모스)나 로마의 입헌(렉스)보다는 구약의 십계에 더 가까운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헌법과 미국의 헌법은 실천적 관점에서 중요한 한 가지 차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혁명 헌법을 그 자체로도 완전무결한 하나의 절대적 헌법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반면에 미국 헌법은 건국의 아버지들이라 불리우는 다양한 사람들의 합작으로 구성되어 애초에 수정 헌법 조항(Amendment)을 포함하고 있어 권위를 수정하고 확장하는 방향성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향점의 차이는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는데 프랑스 대혁명은 그 행위 자체를 유일무이한 그리고 완전무결한 혁명의 “완성"으로 본 반면에 미국은 혁명을 하나의 “과정”으로 여길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건국의 아버지들도 인간이었던지라 자신들의 작업물을 후손들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건국 자체가 혁명의 목적이라면 항상성과 완결성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렌트는 미국의 혁명이 지속 가능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가 구 체계의 확립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 체계 확립을 통해 혁명 정신이었던 새로운 정치 체계의 출범을 민중이 자신의 공적 영역에서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 단위의 기초 자치제가 확립 되면서 인간이 실질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공적 공간을 조성했다는 것이지요.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익 집단의 다원성에 기초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권이 빨리 변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익 집단의 주장에 고착되지 않을 수 있어야 이익 집단의 조정이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처음부터, 혹은 그 언제라도 완전한 체제를 바라기 보다는 움직임으로 역동적(Dynmaic)한 권위와 체제, 그리고 그 역동성(혹은 불안정성) 자체가 힘이 되는 그런 체제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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