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신분증이 필요한 이유(feat. SBT)

크립토 신분증이 뭔데?

현실 세계에서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지갑 안에 신분증 1개 씩은 다들 있잖아?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비롯해서 회사 명함, 심지어는 학생증까지 종류도 다양하지. 신분증은 신정 정보와 행위 정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정량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어. 이러한 정보는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주곤 하지. 상호 검증을 토대로 비즈니스와 같은 공식적인 관계를 형성할 이유를 제공하니까.

크립토가 성장하고 다오가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크립토에서도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인 신분증이 필요해지고 있어. 현재까지의 다오는 돈을 내고 토큰을 산 사람이거나 개인 친분(대부분의 투자 다오) 혹은 이력서(FWB)를 통한 정성적인 평가에 의존해서 신뢰성을 가졌지만 이보다 더 정교한 정보가 필요해지는 거지. 큰 돈을 만지면서 함께 일하려면 조직이 성장해야 하니까 친구의 추천에만 의존하기 어려워지는 거야.

“탈중앙화 사회: 웹3의 영혼을 찾아서”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소울 바운드 토큰(Soul Bound Token, SBT)은 온체인 데이터를 기반한 비거래성 토큰(Non Transferable Token)으로 개인의 사회적 명성을 측정하는 목적을 가져. 영혼(Soul)이라는 시적인 단어를 제외하고 살펴보면 개인의 온체인 행위에 기반한 신분증을 발행한다는 아이디어야. 블록체인에 공개된 거래 데이터를 동사무소처럼 활용해서 온체인의 활동을 기반으로 신원을 검증하는 거지.

그게 왜 필요한데?

아니 선생님 토큰 거래가 안 되면 토큰을 왜 쓰는 거에요?

거래 불가능한 토큰이라는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어. 지금까지의 토큰(코인과 NFT)는 거래 가능성에 기반해 경제적 가치를 만들었잖아? 다른 자산으로의 환금성(Asset Liquidity)가 매우 높으니까. 하지만 이런 자산적 성격으로는 성실함이나 애착심, 협력 가능성과 같이 조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성향을 파악할 수 없어. 자산을 팔고 나가버리면 그만이니까.

이러한 문제로 인해 지금까지의 크립토 조직(다오)는 자산을 가진 사람과 프로젝트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사람간의 괴리 문제가 존재해 왔어. NFT와 거버넌스 토큰이라는 명목적인 참여 장치만으로는 그 사람이 진짜로 여기서 함께 “일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측정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자산의 환금성이 아닌 아닌 개인의 행동에 기반해 정체성을 표현해줄 새로운 형태의 기록 장치가 필요해지는 거야.

이걸 하면 뭐가 좋은데?

내 학위는 라틴어로 써져서 못 읽는다는게 함정

잘 생각해보면 거래 불가능 토큰이라는 건 현실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개념이야. 예를 들어 내 학위 증서는 종이라서 원한다면 언제든 사고 팔 수 있어. 산다는 사람만 있으면. 하지만 학위 증서를 판다고 해서 내 학력을 타인에게 팔 수는 없잖아? 학위 증서 종이를 팔아도 내가 학교를 다녔던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따라서 우리 학교 동창회에서 동창회를 열면 참석해야 할 사람은 학위 증서를 가진 사람이 아닌 내가 되야 하겠지. 또한 구직 이력서에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학력을 쓰는 건 위조가 될거야.

크립토의 거래 불가능한 신원 데이터는 다음과 같은 이점을 만들수 있어.

  1. 무담보 대출
    온체인 대출 시장은 높은 담보 자산 비율에 기반하고 있어. 예를 들어 컴파운드는 내가 예치한 자산의 최대 80%(시간에 따라 변동)을 빌릴 수 있고 메이커다오는 내가 인출할 수 있는 다이(DAI)보다 150% 이상의 이더(ETH)를 담보 자산으로 예치하지 않으면 청산(liquidate) 되버려. 즉 내가 빌릴 수 있는 금액보다 묶어 놔야 하는 금액이 더 큰 거지. 크립토에서 자산 담보 비율이 큰 이유는 신용 정보를 분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야. 개인의 신용 정보를 분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믿을 거라곤 돈과 담보 자산의 금액 뿐이니까. 그러나 크립토 신원 데이터를 활용해 신용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면 담보 자산이 적거나 무담보 대출이 활성화 될 수 있을거야.
  2. 투자와 채용
    크립토 투자와 채용은 지인의 지인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가장 많아. 트위터나 디스코드와 같은 정보 채널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신뢰성을 보장하기 어려울 때도 많기 때문에 오히려 지인 네트워크에 의존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 그래서 크립토 업계를 두고 중앙화 되어 있다거나 이너 써클(Inner Circle)의 향연이라고 표현하기도 해. 끼리끼리 노는 판이라는 거지.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상호 검증과 신뢰성 보장 절차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것 같아. 온체인 데이터로 신원 검증이 가능해지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무허가성(permissionless)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실제로 쓰고 있는데가 있어?

온체인 데이터에 기반한 뱃지(Badge)를 제공하는 Noox

온체인 데이터를 통한 거래 불가 이력을 남기는 시도는 사실 SBT가 처음이 아니야. 다오가 생긴 이래로 온라인/오프라인 이벤트, 거버넌스 미팅과 같은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을 인증하기 위한 장치가 생겨났지. ENS DAO는 서비스를 오랫동안 사용한 사람들의 온체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대적인 토큰 드랍을 하기 했지. 현재 온체인 데이터에 대한 인증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는 곳은 다음과 같아.

  1. Noox
    2022년 베타 출시를 앞두고 있는 온체인 업적 기반 소셜 커뮤니티야.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에서의 특정 거래에 대해 뱃지를 받아서 “나 이런 사람이야"를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지. 예를 들어 오픈씨에서 500회 이상 거래를 한 사람에게는 “오픈씨 전설의 트레이더(Opensea Mythical Trader)” 뱃지가 주어져. 크립토 안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들에게는 유의미한 자랑 요소가 될 수 있는 거지. 아직 클로즈 베타라서 뱃지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환금이 불가능한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POAP보다 SBT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어.
  2. FWB
    2020년부터 시작된 소셜 토큰 기반 토큰 게이티드 커뮤니티로 토큰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디스코드 채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어. FWB는 시즌 5에 거래가 불가능한 ID 카드를 발매했는데 이 카드는 내가 참여하는 활동을 반영해서 이미지가 변해. 활동에는 이벤트 참여, 다오 기여, 역할, 참여 중인 커뮤니티의 NFT를 비롯한 다양한 업적이 포함되어 있지. 아마도 현재 SBT 구현에 가장 가까운 형태가 아닐까 싶어.
  3. P2E와 게이미피케이션 모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인게임 경제 안에서 레벨(시간 투여 대비 효과)과 재화(금전적으로 살 수 있는 요소)의 밸런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너무 잘 알거야. 돈으로 능력치를 모두 사버리는 형평성 붕괴로 인해 흥미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경우가 많으니까. 사실 크립토 기반 게임은 급격한 화폐 가치의 등락으로 환금성과 경제적 이익에 치중되어 있는게 사실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에는 레벨이 있고 이를 통해 과금적인 요소가 아닌 게임 내의 기여치(노력)을 통한 보상이 존재하지. 앞으로 P2E가 코인 투기장이 아닌 게임 자체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거버넌스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때 레벨이 가진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레벨이라는 건 돈이 아닌 시간으로 게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거니까. P2E의 대표격인 엑시 인피니티도 아직 거버넌스의 방법론을 발표하지 않은 상황인데 이 때 온체인 데이터가 활용될 소지가 높을거야.

왜 아직도 안 쓰고 있는데?

웹 3.0의 소셜 네트워크는 어떤 모습일까?

다오와 메타버스, 크립토의 다음 도약을 예견하는 과정에서 자주 거론되는게 “웹3의 페이스북”이야. 페이스북은 웹2.0의 시대를 구축한 장본인으로서 소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공유 방식을 만들었지. 이 때 앞서 말한 SBT와 온체인 데이터 기반 크립토 신분증이 개인의 ID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아. 자체적인 토크노믹스를 가진 서비스가 늘어날 때 이들의 보상 기준을 정하고 유의미한 참여 데이터를 보여주는 방식이 소셜 네트워크아 안에서 커뮤니티가 문화를 형성하는 방법과 직결되겠지.

그런데 대대적인 크립토 신분증 도입을 위해서 넘어야할 4가지 과제가 있어.

  1.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제공 합의 체계
    웹3, 크립토 토크노믹스의 기본 전제는 자신이 합의한 데이터 제공에 대한 적정 보상 제공이야. 예를 들어 페이스북의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 제공에 대해 보상을 받지 않지만 웹3에서는 온체인에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에 합의하고 이에 대한 토큰 보상을 통해 데이터 프라이버시 절충에 합의하는 구조야. 지금의 온체인 데이터를 넘어 훨씬 다각화된 데이터에 기반한 토크노믹스가 활발해 졌을 때 데이터 제공자와 데이터를 등록하는 체인 간의 합의와 적정 보상 체계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여. 예를 들어 의료 데이터와 같은 영역의 경우 수집된 정보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지, 수집 과정의 비공개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와 같은 부분도 중요해지겠지. 즉 온체인으로 공개되는 정보와 오프체인에서 소각되는 정보와의 구분이 명확해져야 할거야. 특히 한 번 올라가면 절대 지워질 수 없다는 온체인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말야.
  2. 데이터 검증의 탈중앙성
    아직 웹3에서의 대부분의 데이터는 중앙화된 주체를 거쳐서 등록되고 있어. 예를 들어 엑시 인피니티나 스테픈과 같은 업체도 중앙화된 게임 혹은 앱 환경을 통해 데이터가 기록되고 코인이 지급되지. 이 경우 해킹의 위험성과 검증의 신뢰성이 중앙화된 주체에 머무를 수 밖에 없게 돼. 또한 지갑 분실이나 아이디 도난과 같은 상황이 발생 했을 때 이를 검증하고 복원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하거든. 데이터의 검증 과정 자체가 블록체인의 노드 검증과 같이 상호, 탈중앙화된 형태를 띌 수 있어야 데이터에 대한 신뢰가 증가해서 네트워크 자체에 대한 신뢰도 증가할 수 있을거야.
  3. 의결 절차의 탈중앙성
    데이터 검증과 마찬가지로 현재 거버넌스는 사실상 코어팀(중앙화된 팀)에 집중되어 있는게 사실이야. NFT, 코인을 통한 투표를 하는 팀도 사실상 멀티시그와 같은 중앙 금고의 통제는 팀이 하고 있기 때문에 자금 집행의 통제권은 팀에 있는 경우도 많아. 거버넌스의 탈중앙성은 위에 말한 3가지 문제 뿐 아니라 전반적인 서비스 UI/UX에 대한 업데이트에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수 밖에 없어. 제안부터 논의, 의결과 집행까지의 과정이 탈중앙화된 형태로 운영될 수 없다면 온체인 데이터에 기반한 신원 시스템이라는게 데이터만 있다 뿐이지 사실상 중앙화된 주체에 의해 통제될 개연성이 높아.

결론이 뭔데?

다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신분증이 나와야 할거야

크립토와 다오가 만드는 세상을 신봉하는 한 사람으로서 크립토의 신분증은 크립토가 현실적인 조직을 구성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근간이라고 생각해. 이번 베어장을 계기로 천천히 성장하는 조직 중에 다음의 크립토 혁명(The Next Wave)를 만드는 곳은 온체인 데이터를 통해 현실과의 접점을 구현해 내는 곳이 되겠지. 아마 이러한 수준에 도달하기 까지는 2–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루디움도 그 때까지 열심히 빌딩을 해야겠다는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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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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