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DAO 잼스터디를 진행 중에 08am 작가님께서 “건물 벽에 그린다고해서 모두 스트릿아트(Streetart)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물 벽과 같은 스트릿(건물벽)에 아트워크가 있다는 점 이외에도 사용 재료나 표현 방식 그리고 작품 의도 모두 스트릿아트를 규정하는 요소일 수 있는 것이죠. 이후 NFT로 발매한 모든 아트워크가 크립토아트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논의가 오갔습니다. 그래서 크립토아트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크립토아트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입니다. NFT 관련 아트 소식을 다루는 Artnome의 창시자 Jason Bailey는 “What is Cryptoart?”에서 크립토아트를 “희귀한 디지털 아트워크(Rare Digital artwork)”로 정의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블록체인에 발행되어 디지털 희소성(Digital Scarcity)을 가지기 때문에 크립토아트라는 것이지요. 추가적으로 크립토아트 디지털 원산(Digital Nativity)나 탈중앙성(Decentralized)와 같은 10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Bailey의 설명은 크립토아트를 정의내리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크립토아트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크립토아트의 구성하는 3가지 요소를 제시합니다. 바로 네러티브(Narrative), 크립토 네이티비티(Crypto Nativity), 분산화된 커뮤니티(Distributed Community)입니다.
1. 네러티브(Narrative)
네러티브란 작품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으로 작가의 삶, 작품의 탄생 배경, 시대 상황처럼 복합적인 맥락을 내포합니다. 네러티브란 단어 자체는 크립토아트에 특화된 단어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중세 미술은 기독교가 지배적인 시대상을 반영해 성자와 성녀 혹은 예수의 모습을 절제되고 기하학적인 법칙에 맞춰 표현했습니다. 반면에 르네상스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한 장면을 인체 구성이나 이상적인 비율에 가깝게 표현합니다. 이처럼 모든 예술작품은 고유의 네러티브를 가집니다.
크립토아트의 네러티브는 블록체인의 탄생과 디지털 세상으로의 전환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으로 발현한 블록체인은 사실 멀게는 1970년대 공개키 암호학을 만든 히피와 1990년대 인터넷을 만든 사이퍼 펑크의 정신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탈중앙화(Decentralization)로 갈무리되는 자유주의(Liberalism)와 저항 정신(Anarchy), 그리고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불신 그리고 희망(Anxiety, Distrust and Hope)이 네러티브의 중심을 이루고 있죠.
Beeple의 작품이 각광 받는 이유도 아마 현 시대의 네러티브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Beeple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는 Mike Winkelmann이 5000일 동안 매일 작업한 습작을 집대성한 작품입니다. 좌상단에서 시작하는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작가의 작화 능력(3D 도구 사용 능력이나 표현력을 포함해서)의 성장과 지난 13년 간의 역사가 함께 담겨있습니다. 스폰지밥이나 피카츄와 같은 캐릭터나 마이클 잭슨,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와 같은 유명인도 보입니다. 작품들은 하나 같이 무언가가 잘못되버린 미래처럼 기괴하고 희화화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 전환으로의 기점에서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하나의 네러티브로 잘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작가와 작품이 다양할 수 있듯이 크립토아트의 네러티브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의 관점에 따라 그리고 삶의 지향에 따라 같은 현상도 다르게 표현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크립토아트가 담고자 하는 네러티브의 정수에는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급격하게 변화는 시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작가의 재량에 달려 있겠지만요.
2. 크립토 네이티비티(Crypto Nativity)
디지털 아트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컴퓨터 아트(Computer Art)라고도 불리는 제너레이티브 아트(Generative Art)는 알고리즘으로 예술 작품의 일부 혹은 전부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위의 형상은 망델브로 집합(Mandelbrot Set)이라고 해서 프렉탈 형태를 구현하는 수식으로 만들어낸 도형입니다. 수식을 코드로 입력하면 그게 아트워크가 되는 거죠. 그래서 게놈(Genome) 방정식이나 소리의 파동, 나무의 모양과 같은 자연 현상에서 영감을 받아 수식을 작품화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너레이티브 아트는 컴퓨터 코드로 구현하기 때문에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아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이 출현하고 디지털 네이티브 아트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NFT를 통한 소유권 검증이 가능해지자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해 제너레이티브 아트를 구현하고 블록체인에 저장하는 이른바 크립토 네이티브(Crypto Native) 아트가 탄생한 것이지요.
위 작품은 Kevin McCoy가 2014년 Namecoin에서 채굴(Minting)한 Quatum이라는 작품입니다. Quantum은 NFT라는 단어가 생기기 3년 전에 최초로 블록체인에 올려진 작품임에도 제너레이티브 아트의 성격을 띄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가장 작은 에너지 단위인 양자(Quantum)를 뜻하는 그 이름처럼 작품은 알고리즘으로 세상의 탄생을 표현하고 있으며 크립토 원산(Crypto Native) 작품의 탄생도 함께 예견했습니다.
제너레이티브 아트, 디지털 네이티브 아트에 더해 크립토 네이티브 아트는 블록체인에 코드를 구현한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탈중앙화된 서버 혹은 파일 시스템에 저장해야 소유권이 완전히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탈중앙화 파일로 저장되지 않은 아트워크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크립토펑크의 경우도 이미지 픽셀 용량이 너무 커서 파일은 따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크립토펑크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원본 파일의 해시값(소유권을 의미하는)이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더리움과 같은 메인체인(Layer 1 Blockchain)에 아트워크를 올리기 위해서는 굉장히 한정적인 제너러티브 아트 구현이 필요합니다. 코드 입력이 길어지면 컨트랙트 구동 자체가 너무 비싸지기 때문이죠. Larva Labs의 Autoglyph는 크립토아트의 한계를 시험한 작품처럼 보입니다. Autoglyph는 40줄의 코드로 수만가지 패턴을 구현하는 알고리즘입니다. 그 중 처음 512개만 콜렉션으로 발매했죠.
모든 아트워크가 제너레티브 아트가 되지 않는 이상 원본 이미지 파일을 저장할 곳은 필수적입니다. 최대한 분산화된 저장 방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IPFS와 같은 분산화된 저장 시스템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3. 분산화 커뮤니티 (Distributed Community)
인터넷 밈의 대명사가 된 Pepe the Frog는 원래 2005년 Matt Furie의 만화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후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인 Myspace, 4chan, Tumblr에서 회자되면서 Sad Pepe, Angry Pepe로 다양하게 진화했죠. 2017년 극우단체(alt-right)와의 충돌로 인한 저작권 소송이 있기 전까지 Pepe the frog는 대중이 사랑하는 밈으로 발전했습니다. 워낙 밈이 많다보니 2014년에는 희귀한 Pepe 이미지를 모은 Rare Pepe에서 카드를 만들어 팔았죠.
밈화의 과정은 다양한 사람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오리지널 이미지의 메시지가 2차, 3차 가공되어 커뮤니티 내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가져야 밈의 의미가 살아나니까요. NFT가 구현되기 전까지는 저작권을 통한 소유권이 독점적인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밈의 참여자가 자신의 2차 창작물에 대한 보상을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NFT가 출현하고 소유권을 분할할 수 있게 되면서 특정 작품을 중심으로 분산화된 커뮤니티(Distributed Community)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창작(Continuous Creation)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위 영상은 RTFKT Studios에서 구현한 Cryptopunk 패션 프로젝트 입니다. 게임 엔진과 AR 기술을 개발하던 RTFKT 스튜디오는 크립토펑크 사용자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2차 가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크립토펑크 캐릭터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펑크 캐릭터를 이용해 스니커나 패션 아이템을 만들기도 하고 AR을 이용해서 패션쇼를 한 다음 겔러리에 전시하기도 하죠. 게임처럼 유기적인 커뮤니티 교류(Interaction)가 가능합니다.
크립토아트를 중심으로 분산화된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수 있는 이유는 NFT의 소유권 구조에 있습니다. NFT에는 창작자, 판매자, 구매자, 토큰 소유자, 라이센스 활용자, 파일 저장자, 거래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각각의 관계자에게 어떤 지위와 권한을 부여하는가에 따라 아트워크의 활용도와 커뮤니티의 분산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커뮤니티 사용자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원활한 교류 환경을 제공하는 오거나이저(Organizer)의 역할도 중요하죠.
커뮤니티 환경은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구성을 촉발합니다. DAO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기반 조직으로 지역, 인종, 성별과 같은 “현실 세계의(real world based)" 문제보다 프로젝트의 성격과 목표와 같은 “커뮤니티 목표(Community Common Ground)”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Flamingo DAO는 미국 델러웨어에 소재한 DAO로 NFT 투자자를 위한 DAO입니다. 멤버십은 AML, KYC, OFAC을 포함한 미국 투자법을 준수해야 하며 100명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멤버는 Flamingo에 이더를 예치해서Flamingo Unit이라 불리는 블록(일종의 지분)을 획득합니다. 이들은 공동 투자를 통한 NFT 시장 개척을 목표로 합니다.
Concluding Remark
크립토아트와 이들의 특징적인 요소를 공부하면서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너무나 빠르게 다양한 조직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제가 알고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한정적이다 보니 다루지 못한 주제도 많다고 느껴집니다. 따라서 아티클은 완성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체인처럼 코멘트와 추가 자료, 비평(Critic)을 통해 진화하는 일종의 Wiki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신 HAN DAO 멤버분들과 HAN DAO를 이끌고 계신 Lucia님, NFT의 놀이 가능성(playability)를 처음 알려주신 문영훈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