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무서운 판데믹, 페스트

아곤
8 min readMar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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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미래의 창,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1. 코로나의 사회적 거리

“일부는 과한 것을 피해 절제하는 삶을 유지하면 전염병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들은 작은 커뮤니티를 구성해 다른 이들과 격리된 삶을 살았다. 자신들은 병자가 없는 집 안에 틀어박혀 온화하게 최상의 음식과 최상의 와인을 즐겼고 지나친 것을 피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죽음과 병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 않았으며 음악과 같은 유희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 지오바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중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 현상 묘사

뉴욕 타임즈에서 그린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ing) 운동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영화관에는 개봉하는 영화 숫자보다 사람 수가 적고 교회는 예배를 멈췄습니다. 사회적 거리 지키기 운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리모트 워크를 하는 직장인들은 슬슬 집에 있는게 심심하고 좀이 쑤시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1500 언저리에서 아이스 스케이팅을 타고 있는 코스피를 보면서 식당 주인과 택시 기사님들은 언제나 이 시기가 지나갈까 깊은 한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판데믹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입니다. 언젠간 지나가게 되어 있고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다만 코로나가 남긴 사회적 거리는 앞으로 우리의 모습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종교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여파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체제에 도전 과제를 던질 것이며 이로 인해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새로운 질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거대한 변화의 시기 이전에는 많은 판데믹(세계적 질병)이 있었는데 미래의 창에서 출판한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다양한 예시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저는 페스트에 특히 관심이 생겨 조금 더 조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페스트는 수세기에 걸쳐 몇 번이나 유럽을 뒤집어 놓은 병이니까요. 그 중 2가지 사례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2. 제국을 멸망시키고 제국을 일으키다

“강인하던 허약하던 신체적인 차이는 저항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떤 의학적 치료도 소용이 없었고 병은 전파되어 갔다. 이 중 가장 최악의 비극은 병의 초기 증상을 무시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절망에 빠져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양처럼 서서히 죽어가면서 서로를 만나 감염시켰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사망자는 이러한 행위에서 비롯되었다.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II-51 역병에 관한 서술

MIchiel Sweerts, 아테네 역병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는 명실상부 제국으로 발돋음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해군력도 갖춘데다가 해상 무역을 통한 경제력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마지막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르타와 그리스 패권을 두고 전쟁을 벌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테네를 황금기로 이끈 페리클래스 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최선의 전략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통솔력까지 갖춘 아테네는 승리를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아테네에 질병이 돌기 시작합니다. 훗날 투퀴디데스 역병으로 알려진 이 질병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페스트의 일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례없는 역병으로 인해 아테네의 많은 아테네의 시민이 가족을 잃었고 국가적으로는 군사력과 경제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힙니다.

또한 페리클래스는 역병의 책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스파르타는 역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적을 그냥 둘 수 없었기 때문에 아테네의 목전까지 군대를 진격하게 되는데 아테네는 저항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거나 죽고 있는 중이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투에 나가고 싶어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페리클래스는 도시의 문을 걸어 잠그고 방어하는 전략을 펼칩니다. 스파르타는 역병이 생각보다 심했기 때문에 자국군을 위협에 노출시킬 수 없어 퇴각하죠. 폐쇄된 아테네에서 전염병은 더욱 심각하게 퍼졌고 페리클래스는 전염의 책임을 물어 최고 지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역병으로 인해 커다란 타격을 입은 아테네는 결국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합니다. 그리고 아테네는 30년 간 스파르타의 통치 아래에 있게 되죠. 물론 아테네의 저항은 거셌습니다. 민주주의 사회를 기초로 한 아테네 시민들은 스파르타의 압제적인 독재 체제를 견딜 수 없었으니까요.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당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저항했습니다.

어부지리라고 했나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끈임없는 암투의 혜택을 받은 건 엉뚱하게도 그리스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20년 후, 마케도니아에서는 새로운 왕이 태어납니다. 그는 필립 II세로 마케도니아의 군을 정비하여 그리스를 정벌하였고 전쟁으로 허약해진 아테네를 손쉽게 점령합니다. 그가 암살 당한 후 필립 II세의 아들이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버지가 못다한 그리스 정벌을 마친 후 페르시아까지 진출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제국을 세웁니다.

3. 흑사병의 납골당 위에 르네상스의 꽃이 피다

“남여 모두 사타구니와 겨드랑이 주변이 부어오르면서 증상이 시작되었다. 크기는 사과 혹은 달걀의 정도였으며 종양이라 생각되었다. 짧은 시일 내에 종양은 온 몸으로 퍼졌다. 그리고 다리와 종아리 부위에 검거나 보라색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몇몇은 크기가 컸고 크기가 작은 것도 있었다. 이러한 반점은 확실한 죽음의 징표가 되었고 초기의 종양도 마찬가지였다.
— 지오바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중 흑사병 증상에 대한 묘사

죽음이 춤을 추는 흑사병

중세에 발병한 페스트인 흑사병은 선페스트(bubonic plague)의 하나로 쥐벼룩을 통해 전염되었습니다. 1347년부터 1352년까지 5년 간 지속되면서 유럽에 거대한 재앙을 불러왔죠.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은 모두 파탄이 났고 전체 유럽 인구의 1/4에서 1/3 정도가 사망했으니까요. 페스트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면 사망률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치료 방법은 커녕 전염 경로도 모르는 시기였으니 속수무책이었죠.

흑사병은 중세를 지탱하던 2가지 근간을 모두 무너트립니다. 먼저 신앙이 시험대에 오르죠. 중세의 교회는 일요일에 시간을 보내는 곳을 넘어 법정이며 봉건제도의 귀족체제를 정신적으로 지탱해주는 중심축이었습니다. 흑사병으로 인해 사제가 죽고 더 이상 의탁할 곳을 잃은 농노는 신앙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찾는 선택을 하게 되죠. 결국 신앙의 종말은 사회 권위와 계급 체제의 종말을 수반했습니다.

또한 산업이 변화합니다. 원래 봉건제도 아래에서 대부분의 성은 농노를 중심으로 노동 집약적인 농경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작할 땅에 비해 노동자의 숫자가 줄고 먹을 사람에 비해 자원이 풍부해지자 공업과 상업이 성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ice)와 플로렌스(Florence) 같은 지방은 점점 새로운 상업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죠.

르네상스는 중세 사람들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회 문화 혁명입니다. 이미 추락해버린 신앙심에 힘입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이 담긴 인본주의 작품이 나타났고 공업과 상업에 힘입어 실크로드 개척을 통한 동서양 무역이 성행했으니까요. 이러한 변화는 모두 흑사병의 납골당 위에 피어난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그럼 코로나는 어떤 영향을 남길까?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 마태복음 26장 40–41절

영화 28일 후의 한 장면

코로나가 이번 시즌 안에 끝날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갈 것인지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어느 정도 지나갔다는 가정 하에 지금까지 나타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a. 마스크 대란
: 개인주의와 사회 통제가 혼합되어 나타난 가장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정치 체제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b. 인포데믹
: 코로나의 무서움은 살상률이 아닌 전염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염률보다 더 빨랐던 것이 전파율이었습니다. 랜선 감염이 이보다 심했던 질병은 없었다고 봅니다.

c. 사회적 거리
: “코로나가 발발했을 때 누구와 있었는가?”의 답이 아마도 “나는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가?”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대형 교회, 학교, 클럽을 대체하는 소규모 커뮤니티가 가능할지 주목해 봅니다.

d. 디지털 인프라
: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뜬소문(buzz word)가 이번처럼 피부로 와닿은 적은 없었다고 봅니다. 마스크 재고 확인, 리모트 워킹, 새벽 배송, 결재까지 O2O가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으니까요. 아마존 무인 스토어가 설치됐는데 진짜 디지털 경제가 시작될 것 같네요.

흥미진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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