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시간(Willing in Time)

아곤
4 min readMar 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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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나아렌트 정신의 삶 2권 1장 철학자들의 의지

의지란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의지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개념조차 없었다가 중세 시대 이후에 인간의 하나의 능력이라는 논의가 발전했으며 근대 이후 자유 이념을 뒷받침하는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는 의지의 발전이 고대에서 중세, 근대로 넘어오는 인류의 시간관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순환적 시간관

고대 그리스인은 천체의 운동처럼 순환하는 시간관에 기반하여 사고하였습니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의 반복처럼 그리스인에게 시간이란 순환하고 반복되는 운동 속에 하나의 지점일 뿐입니다. 그리스 철학 이론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시간관에 기반하여 가능과 실체를 구분했습니다. 가능이란 도토리가 떡갈나무로 자라고 동물의 새끼가 성체로 자라는 것처럼 잠재적으로 내재된 본질입니다. 이는 우연적인 행위에 의해 실체로 구현될 수 있지만 그 우연성은 한시적인 것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월식이나 일식이 천체 운동에서 우연적인 산물처럼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인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본질은 태양과 지구 그리고 달의 운동 그 자체인 것이지요.

이러한 시간관 하에서 의지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미 본질적으로 내제된 운동의 흐름인 시간 안에서 인간의 의지는 일식이나 월식처럼 부차적인 현상일 뿐이니까요. 결국 모든 건 텔로스(Telos)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순환 운동의 과정일 뿐입니다.

직선적 시간관과 진보

의지의 태동은 인간 행위의 위대성과 우연성을 강조한 역사학자들의 직선적 시간관에서 탄생했습니다. 직선적 시간관은 순환적 시간관과 상반되게 시작과 끝이 존재합니다. 예수의 죽음과 재림이 새로운 미래를 열었던 것처럼 모든 사건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고 이후에는 또 다른 시작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관에서 의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경종으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내가 의지한다는 말의 뜻은 내가 바라는 대로 행하는 것이고 과거에 의해 결정된 시간이 아닌 새로운 미래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직선적 시간관은 근대에 이르러서 진보 개념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진보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이라는 미래를 꿈꾸는 개념인데 이는 순환적 시간관에서는 불가능한 개념이니까요. 결국 미래와 진보는 새로운 시작을 알릴 수 있는 의지라는 개념이 선행되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중세 철학자들은 의지를 부정했습니다. 홉스와 스피노자는 의지를 의식의 환영이라고 치부했으며 의지를 통한 자유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인과관계라는 필연성의 고리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말하는 의지도 결코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지요. 즉 사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성과 법칙이 의지와 자유처럼 우연적인 요소보다 존재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에 의지는 부차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헤겔과 역사 철학

그렇다면 진보하는 시대의 “새로움"은 과연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만약 모든 것이 과거에 이미 결정되었고 필연성에 의해서만 발현된다면 새로운 상황,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올까요?

헤겔은 역사와 시대정신의 조합이라는 독특한 시간관을 통해 순환적 시간관과 직선적 시간관의 조합을 고안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은 정, 반, 합이라는 3단계의 순환적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은 새로운 탄생 즉 시작을 의미합니다. 직선적 세계관에서와 마찬가지로 헤겔의 시간 안에서는 끈임없이 새로운 탄생이 가능한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탄생에는 몰락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반"이지요. “반”으로 인해 “정”은 본래의 모습을 상실합니다. 몰락 이후에는 결론적으로 “합”이 생성됩니다. 따라서 “정”과 “합"은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구성은 순환적 시간관에서도 나타나며 직선적 시간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다만 순환적 시간관은 정 -> 반 -> 합의 과정이 반복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직선적 시간관은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헤겔의 역사관의 특이성이 돋보입니다. 헤겔은 “합"이 그 자체로 하나의 “정”을 형성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정 -> 반 -> 합이 반복된다는 관점에서는 순환적 논리로 보일 수 있지만 합이 새로운 정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진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헤겔은 이를 “세계정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나선형 시간관을 통해 헤겔은 개별 인간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는 세계정신의 발현으로 진보하는 시간관을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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