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글 주의(TLDR)
루디움 정규 시즌 2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해온 일을 돌아보고 있어.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정리하는 시간이지. 개인적인 감상이 주요 내용이라 대충 훑어만 봐도 괜찮을 것 같아.
아곤은 누구인가?
나는 개인이 자유로운 삶을 살 때 좋은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믿어. 여기서 자유란 내가 하고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일치를 뜻해. 우리는 고유의 성향과 바라는 것이 있고 살아가면서 이를 실현해 나가잖아? 처음부터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출 수는 없겠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고 새로운 기회를 마주하면서 점점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구체화하지. 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과정도 자유의 일환이라 생각해. 또한 이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느껴.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환경을 갖추기는 매우 어려워. 경제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서 지속성을 보장하기 어렵고 사회 문화적으로 시스템의 통제를 받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는 이유는 내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일거야. 그러나 막상 들어가보면 조직에서 정한 시스템의 통제를 받게 돼. 내가 정하지도 않은, 정할 수도 없는 시스템의 규칙에 편입되기도 하지. 이 과정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괴리가 생겨. 자유를 잃는거지.
그래서 나는 자유로움 삶 속에서도 현실적으로 유지가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의 출현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모든 일은 이러한 커뮤니티를 실현하는 거야.
크립토를 시작한 이유
2017년 여름이었어. 공군통역장교로 대구에서 있을 때 대학교 선배였던 시은님을 강남에서 만났는데 블록체인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더라구. 그리고 강남에 집을 빌려서 사람들하고 같이 살겠다는거야. 커뮤니티의 지속성에 관심을 가지던 나로서 비트코인은 신기하면서도 미지의 세계로 다가왔어. 아니 지금 시국에 디지털로 막 찍어낸 화폐가 어떻게 가능하다건지 너무 궁금했거든. 그래서 비트코인 백서를 처음 읽었어. 그리고 시은님과 영훈님이 시작한 논스에 5번 째 멤버로 합류했지. 나와 크립토의 기나긴 인연의 시작이야.
논스에서 나는 처음 온 사람들을 반겨주는 일을 주로 했어. 그 때까지만 해도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해 뭔가를 알려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 자료도 부족했구. 그래서 크립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논스에 자주 찾아왔지. 오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논스가 뭐하는 곳인지 설명도 해야하고 블록체인에 대해 같이 배우고픈 사람들과 할 거리가 필요해지더라구. 그래서 논스에 처음 오는 사람들을 위한 신입주민세션이라는 것도 만들고 크립토와 관련된 독서 모임도 열면서 함께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어. 누군가에게 새로운 걸 알려주면서 크립토를 가장 많이 배웠던 것 같아.
나에게 크립토란 커뮤니티가 주도적으로 정한 가치를 사회적으로 통용시키는 경제 시스템이야. 토큰과 체인, NFT와 다오가 서로 다 달라 보여도 사실 서로 모여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고 이를 수행하는 네트워크 환경, 가치 분배를 위한 인센티브 체계과 이 모든 걸 결정하는 거버넌스의 과정을 거쳐. 이러한 과정에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지, 또 실제로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따라 커뮤니티의 가치와 신뢰성이 달라지지.
루디움을 시작한 이유
2019년 전역을 할 즈음 크립토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어. ICO를 통해 코인 찍는 거 이외에는 할게 별로 없더라구. 독서 모임도 하고 열심히 행사도 다녀봤는데 그 다음에 투자 말고는 뭘해야할지 모르겠는거야. 그 때까지 전혀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 나로서는 개발자가 아닌 이상 여기서 뭔가를 하기는 어렵다고 느꼈어. 그래서 원래 하려던 커뮤니티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낙성대에 살롱에드할이라는 공간을 열었어. 독서 모임부터, 영어, 영화보기, 파티까지 안 해본 모임이 없는 것 같아. 그러다가 좀 더 본격적으로 커뮤니티와 모임을 운영하려고 루디움이라는 개인사업자까지 새로 만들었지.
루디움가 본격적으로 크립토와 연관성을 가지게 된 건 2021년 여름이야. 한다오의 루시아님과 함께 NFT 온보딩을 원하는 아티스트, 기업인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했거든. 이제는 프로그램이 더 다양해지고 각자의 성과를 얻은 인원들이 탄생하고 있어. 예를 들어 엑시시스터즈는 엑시 인피니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크립토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현상을 만들고 있어. 08AM, 요요진, 낙타와 같은 작가들은 NFT 아티스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 이외에도 하나클럽원, IMM 인베스트먼트, 서울문화재단을 대상으로 크립토 교육을 진행했지. 또한 이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파생되고 있어. 예를 들어 골든에그와는 제주도에 4천 평의 땅을 사서 크립토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기획 중이고 바쿠스와는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멤버십 NFT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티 인원들이 주도해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이야. 시작은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이었지만 커뮤니티 멤버가 주도적으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생태계가 확장하고 있지. 앞으로 루디움은 더 다양한 참여자가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어.
루디움이 하려는 것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게 뭘까? 가장 먼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뭘 해야할지 배우는 시간이 필요할거야. 그리고 나서는 함께 프로젝트를 만들어갈 팀원이 모아져야 겠지? 마지막으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지. 루디움은 행위 증명과 트래저리를 통해 환경을 만들고자 해. 누구나 행위에 기반해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토대가 주어지는거야.
발상의 시작은 트래저리를 운영하는 두들즈, 나운즈, 깃코인과 같은 다오에서 시작했어. 이러한 다오들은 기금을 운영을 통해 신기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그런데 현재의 다오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 참여자가 한정된다
대부분의 다오들은 NFT 혹은 코인을 활용해 거버넌스를 운영하는데 이들의 숫자는 유한해. 토큰은 희소성이 있어야 가치를 보장할 수 있으니까. 반면에 거버넌스, 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신규 유입이 계속 필요하지.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 운영을 위해서라면 상관 없겠지만 대중적으로 성장하는 비즈니스를 만드는데 있어 토큰의 유한성은 커뮤니티 참여에 제약이 되고 있어. - 투자자와 활동자의 괴리가 발생한다
토큰을 샀다고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한다는 보장은 없어. 물론 홀더로서 토큰의 가격 상승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도 있을거야. 하지만 대부분의 NFT 프로젝트는 더 많이 활동한다고 해서 직접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야. - 자금 집행 대상자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트래저리의 집행은 정성적인 제안서(Proposal)의 형태로 이루어져. 따라서 이를 검증할 정량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힘들지. 기존 투자 집행에 있어 재무재표, 대표의 학력, 팀의 이력이 중요한 지표로 작용했다면 트래저리 집행에 있어서도 이러한 기준이 중요해질거야. 그러나 현재로서는 제안서에 작성된 내용 이외에 요청자를 검증할 기준이 부족해. - 성과 측정 및 환수 방법이 불명확하다
트래저리 제안서에는 기대 효과와 혜택과 같은 부분을 통해 기금 집행의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하지만 아직까지는 효과의 측정 기준과 환수(Return) 방법이 정해지지 않았어. 예를 들어 트래저리에서 100ETH를 받아 사업을 하나 연다고 했을 때 실패하거나 중단되면 어떻게 될까? 아직은 남은 금액을 돌려 받거나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명확한 담보 자산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야.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루디움은 포인트와 트래저리의 분할을 통해 거버넌스와 재정 시스템을 분리하고자 해. 포인트란 행위 증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화를 뜻해. 게임에서 사냥을 하면 경험치를 얻는 것처럼 루디움에서 교육 프로그램이나 운영에 참여하면 포인트를 얻는 방식이야. 지금까지 포인트의 책정 기준은 루디움의 운영진인 디렉투스가 정해왔어. 하지만 앞으로는 포인트 분배 자체를 컨트랙트 방식으로 전환하려 해.
컨트랙트는 누구나 작성할 수 있는 루디움의 운영 정책 문서야. 기존 EIP와 트래저리의 제안서 방식을 혼합한 거라 이해하면 될 것 같아. 모든 컨트랙트에는 기본적으로 5가지 항목이 있어.
- 제안자(Initiation)
컨트랙트의 작성자로 개인일 수도 있고 여러 명 일수도 있어. 이들은 컨트랙트의 시작부터 반환까지의 책임을 가지고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자신의 포인트가 차감될 수 있는 리스크를 가져. - 설명(Description)
컨트랙트의 내용이야. 참여하는 인원이 누구인지, 뭘 하려는지, 언제까지 지속되는지를 비롯해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수록 설득력이 높아져. 또한 컨트랙트에 작성된 내용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 포함되어야 신뢰가 생기지. - 금액(Amount)
컨트랙트 실행을 위해 요청하는 재화의 총량이야. 포인트가 될 수도 있고 트래저리의 금액이 될 수도 있지. 요청 가능한 금액의 총량은 제안자의 포인트 총량에 따라 달라져. 예를 들어 내가 가진게 1000포인트이고 현재 후원 가격이 5포인트 당 0.03ETH라면 내가 요청할 수 있는 총액은 6ETH야. 금액은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에 대한 내역(Budget Breakdown)이 있으면 더 좋아. - 반환(Return)
요청 금액에 따라 책정되는 반환 금액이야. 포인트와 트래저리 가치를 합산해서 계산해. 예를 들어 3ETH와 500포인트를 요청했는데 후원 가격이 5포인트 당 0.03ETH라면 총 6ETH를 반환해야 하는 구조인거지. - 투표(Voting)
컨트랙트 실행을 위해 참여하는 과정이야. 통과의 기준은 금액과 컨트랙트의 유형에 따라 다를 수 있어. 트래저리와 포인트를 요청하는 컨트랙트의 경우 요청 포인트의 200%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해. 또한 투표 참여자는 1차 검증자(Validator)로 컨트랙트의 실행 여부를 함께 검증해야할 의무를 가져.
컨트랙트 작성의 목적은 자율적인 참여와 상호 검증 환경의 보장이야. 행위 증명을 한만큼 포인트를 받아 자신만의 컨트랙트를 작성하고 반환에 대한 검증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자 하는거야.
아곤이 하고 싶은 것
나는 컨트랙트와 네트워크 구조를 통해 궁극적으로 루디움의 포인트 분배, 트래저리 관리가 모두 탈중앙화적인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래. 누구나 모임에 참여해서 포인트를 획득하고 이에 기반해서 자신만의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 토대가 주어지는 거지.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픈 것을 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
루디움 안에서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 커뮤니티를 시작하는 인원들과 함께할거야. 아이디에이션 과정에서부터 실질적인 프로젝트 빌딩을 하는 과정까지 고민을 나누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을 돕고 싶어. 루디움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자유로운 모습을 찾아가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