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아곤
6 min readAug 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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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출시된 지 10년이 되는 올해 블록체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카페에 앉아 있어도 종종 옆에 계신 분들이 자신이 투자한 블록체인 관련 자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투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되거나 대중에 노출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보니 제게 백서 검토를 문의하시는 분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요즘 전망을 묻곤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굉장히 당황스럽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 바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블록체인에 열성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써 열심이 개발하시는 분들을 아는데도 이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앞으로의 동향에 대해 낙관하시는 분들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블록체인이 산업으로 인정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지난 10년 간 보안성이 인정을 받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암호화폐가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1. 보안성: 블록체인의 탈중앙화적 구조는 시스템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검증하는 노드를 분산시켜 보안성을 증가 시킵니다. 예를 들어 모든 데이터가 한 곳에 저장되어 있다면 공격자는 그 곳을 공격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비용을 감수 해서라도 공격을 감행할 것입니다. 반면에 탈중앙화된 시스템의 경우 공격자는 여러 노드를 동시에 공격하거나 담합을 해야 하는 등 동시 다발적인 행동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때 공격을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증가하는데 이 비용이 공격의 효과보다 크다면 공격자는 공격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2. 가치 저장의 수단: 암호자산이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인정 받게 된 이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탈중앙화적 신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까지 신뢰의 주체는 검증을 수행하는 정부 혹은 중앙 기관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화폐 발행 이후의 계좌(원장)를 관리하는 역할은 은행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은행 및 다른 중앙 기관이 없이도 화폐 발행과 원장의 관리를 통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물론 블록체인이 더 다양한 방면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아직은 기술적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가치 저장의 수단을 넘어 실생활에 적용 가능한 기술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술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블록체인 업계에는 충분히 유능한 개발자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들의 노력이 성과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블록체인이 가지는 의미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지가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편리한 것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블록체인은 그리 매력적인 기술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데이터 처리 속도나 효율성으로 본다면 중앙화 서버에 비해 훨씬 떨어집니다. 또한 희소성이 있는 데이터(암호화폐라고 불리는)를 발행하고 디지털 상에서 거래를 처리하기 때문에 기존 관행을 피할 수 있어 수수료가 더 저렴할 수도 있겠지만 화폐 가치, 수수료의 변동성 문제와 기존 체계의 편의성을 봤을 때 아직은 이러한 효과로 사용자를 설득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자는 기존 서비스와 비교해서 더 느리고 대중적이지도 않은 기술 사용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를 앉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의 사용 이유는 궁극적으로 탈중앙화 요소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에서 탈중앙적화가 가지는 의미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당시 민주주의가 가진 의미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혁명이 사람들에게 의사 표현과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면 블록체인은 디지털 세계에서 네트워크의 참여권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가속화 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엔진이 인센티브와 합의 과정입니다. 블록체인은 프로토콜에 따라 유의미한 행동에 보상을 제공하고 해가 되는 행동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 제재를 가합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의 참여를 유도해서 똑똑한 한 명이 만드는 제품이 아닌 진화하는 프로토콜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모든 조직을 탈중앙화한 것은 아니듯이 블록체인이 모든 모델을 탈중앙화할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성격과 보안 수준을 고려해서 필요한 수준의 탈중앙화 정도를 설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은 실험적인 단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너무 많다 보니 이러한 탈중앙화 수준에 대한 고려가 매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시된 아이디어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명확한 절차와 시행 방법이 아직 부족한 상태입니다. 결국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과연 탈중앙화가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가치인지 또한 제공하는 서비스에 적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인 것입니다.

이렇듯 아직 많은 부분이 의문점으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불확실한 약속을 당연하다는 듯이 내걸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 마케팅을 위한 편리한 도구 정도로 전락한 것으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기관 및 개인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업계의 주도적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핫한' 단어로 언어유희를 펼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최소 몇 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 기대어 아이디어 제시 자체가 의미 있다는 풍토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있는 언변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약속을 내걸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약속을 지켰는지에 따라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업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지금까지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용자를 설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블록체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싶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블록체인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개발하고 싶다면 탈중앙화를 이해하고 자신이 개발하려는 서비스가 얼마나 어떤 형태를 띄고 싶은지 정해야 합니다. 만약 업그레이드를 비롯한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원한다면 최대한 중앙화된 형태가 선택해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블록체인이 어쩌고 탈중앙화가 어쩌고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중앙화된 제품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블록체인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블록체인은 기술이지 목적도 사상도 아닙니다.

기술이 성숙한다는 건 사례를 통해 그 활용도를 추적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블록체인은 어디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성숙한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언젠가 사용자가 네트워크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는 사실이 의미를 가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에 자유가 일말의 의미라도 있다면 자유는 함께 누릴 때 그 크기가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실험적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순간의 욕망을 뿌리치고 초연하고 묵묵하게 이 기술의 한계를 시험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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