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로어 시즌 1을 마치면서…

로어의 북클럽을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는 아마 작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세인트존스라는 조그만 대학교를 나왔는데 이곳에서는 4년 내내 배워야 하는 과목이 해져 있어 그리스시대부터 세계 2차 대전 이전까지의 고전을 읽습니다. 또한 교수님이 강의를 하는 대신 학생이 책을 읽어와 그 날의 분량에 해당하는 내용을 토의하고 시험이 없기 때문에 수업 참여도와 글 쓰기로 학업 성취도를 평가 받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람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 굉장히 달라 보였던 사람도 생각보다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배웠습니다. 작년 5월에 마지막으로 학교를 방문했을 때 저는 서로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것 이상 값진 시간은 없고 더 많은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가면 꼭 북클럽을 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한국에 돌아와서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 해가 지났습니다. 그 때 저는 논스에서 신입 주민 세션을 운영했습니다. 당시 논스에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대해 배우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초심자 분들을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그 때 블록체인에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과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북클럽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왕 북클럽을 만드는 김에 블록체인답게 프로토콜에 입각한 경제 체계를 구축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5월에 처음 북클럽을 시작할 때는 사람도 모아서 프로토콜도 설정해 보고 나름대로 백서도 작성해 보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을 시작하는데 1년이나 걸렸지만 그 시간 동안 나름대로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해서 자신이 있었습니다.

초반의 로어의 프로토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자발적인 참여였습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암호화폐(혹은 블록체인)은 새로운 형태의 학습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혁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혁신에 걸맞는 학습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자료의 양으로만 봤을 때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만큼 교육 자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린스턴에서는 2013년 비트코인에 관련된 책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비트코인에 대한 강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Youtube를 찾아보면 초보자를 위한 블록체인 용어 해석 컨텐츠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업계 자체가 오픈 소스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각 프로젝트의 백서, 최근 인터뷰, 밋업 내용 등 필요한 건 거의 대부분의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자료를 보기만 해서는 블록체인이 가지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해봐야 지금까지 성공한 모델을 분석해서 비슷한 형태를 도입하는 정도가 고작일 것입니다. 로어가 원하는 건 성공한 모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어가 바라는 건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잡지식이라도 자신이 주도적으로 찾아보는 행위입니다.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나 사건이 나왔을 때 그걸 검색해 보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그것이 더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러한 방법론이 사람들에게는 생소 했나 봅니다. 처음에 20명 가량 모였던 북클럽의 인원이 점점 10명 5명 줄어가는 것을 보면서 제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가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실은 모르고 이상적인 학습 방법만 찾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하는 건 주지도 못하면서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 고집을 부리고 있는건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북클럽의 비지니스 모델, 인센티브 구조, 홍보, 컨텐츠 등의 부분을 고민하면서 사람들이 소화하기 쉬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도 했습니다. 타겟층을 세밀히 분석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어야 비지니스로서 성공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트레바리와 같은 성공적인 북클럽 모델도 고민해 보고 다른 MOOC 모델이나 아예 전문적인 리서치 모델 등 몇 가지 다른 모델 도입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습니다.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패널티를 부여하는 방안이나 정말 딱 필요한 사람만 같이 가는 방안도 고려해 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답 없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가장 큰 도움을 줬던 것 역시 로어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로토콜 설정부터 제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상빈, 원녕, 동욱님과 새롭게 참여해 주신 찬현, 진경님까지 지금도 제 옆에서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지금도 투정 섞인 말로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했을 때 옆에서 천천히 가도 된다는 말을 해주시곤 합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건 로어는 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시작은 저라는 사람의 주도에 의해 북클럽이라는 세션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카톡방에서 다양한 분들이 소식을 공유하고 계십니다. 이더리움 3주년 파티도 열었고 Studypi Teckle같이 이미 활발하게 교육을 하시는 분들도 있으며 주말에 석촌호수에서 달리기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굳이 이런 소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로어 카톡방에 계신 모든 분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열심히 사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걸 봤을 때 제가 주최하는 조그만 세션에 사람이 많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저 북클럽을 시작한 북클럽 참여자 중 한명일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보니 로어는 저에게 참 고마운 일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1년 동안이나 그렇게 하고 싶었던 북클럽을 드디어 시작해서 한 권을 끝낼 수 있도록 용기를 줬고 많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으며 매주 글을 쓸 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무얼 해야하면 더 즐거울 수 있을지 행복한 고민거리를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비트코인의 역사에 대해 좀 더 싶도있게 고민하면서 글을 써 나갈 생각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비트코인의 기반이 되는 기술인 암호학, 분산 컴퓨팅, 원장, 합의 알고리즘, 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토시의 이메일과 대화로 이루어진 초기 비트코인의 역사나 그 이후 주요한 사건들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가지를 병행하면서 혼자 쓰기에는 매우 버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하나씩 쌓이는 것도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북클럽 로어는 시즌 2에 트루스머신으로 새롭게 찾아올 예정입니다. 아마 앞으로 가는 길도 쉽지는 않겠지만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이 늘어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다음 시즌에도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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