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도 이력이 된 장군, 알키비아데스

참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키비아데스편

단테의 신곡 “지옥(Inferno)”편은 총 9층의 지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깊은 심연의 지옥인 9층에는 사탄인 루시퍼가 3명을 입에 물고 있습니다. 이 세명의 인물은 유다와 부르투스, 카시어스로 예수와 카이사르를 배신한 인물로 알려져있죠. 단테는 “배신"을 그 어떤 죄보다 무겁게 생각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배신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배신자로 낙인 찍힌 사람은 사회에서 대접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배신을 너무 잘해서 추앙받은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키비아데스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막바지에 아테네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시칠리아 원정 도중에 본국에서 죄를 추궁받자 아테네를 배신하고 스파르타에 비밀을 팔아넘겨 아테네를 곤궁에 빠트립니다. 그리고 다시 스파르타를 배신해 페르시아로 넘어갔다가 아테네로 돌아오지만 다시 추방당하고 말죠. 그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모든 곳에서 시기를 받았고 결국 아테네에서 암살당해 죽습니다.

배신은 춥습니다

1. 배경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귀족 출신으로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도중에 사망한 페리클레스의 친척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용모가 매우 뛰어나 모든 아테네인이 그의 아름다움을 흠모했다고 합니다.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는 진실된 충고를 하며 그를 아꼈는데 포티다이아 전투에서는 다친 알키비아데스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능력도 출중하고 기회도 많았던 알키비아데스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정치에 입문합니다. 하지만 그는 경쟁심과 명예욕이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민중을 선동해서 애꿎은 사람을 추방하도록 선동하는 한편 스파르타에서 찾아온 사절단을 회유해서 아테네 시민을 놀래키고 이를 빌미로 당시 가장 명망이 높았던 니키아스 장군에게 정치적 공세를 가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살려 자신이 아테네의 최고 지휘자 자리에 오르게 되죠.

아름다운 알키비아데스

2. 시칠리아 정벌과 추방

아테네 최고 지위에 오른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시민의 욕망을 부추겨서 시칠리아 원정을 주장합니다. 그 자신은 시칠리아를 넘어 카르타고와 리비아를 정벌해서 지중해를 평정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결국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 모든 함대를 이끌고 머나먼 시칠리아까지 원정을 떠납니다.

알키비아데스가 시칠리아로 떠나기 전과 후부터 알키비아데스를 시기했던 아테네의 세력은 그를 몰아내기 위해 소송을 걸었습니다. 빌미가 된 사건은 알키비아데스와 그의 친구들이 신의 조각상을 파괴하고 신전을 모독했다는 것이었지요. 고발당한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느니 적인 스파르타에 망명을 요청해 버립니다. 스파르타는 전쟁 중인 적국의 장군을 환영하며 맞이하죠. 알키비아데스의 배신에 화가 난 아테네는 그의 재산을 몰수하고 모든 사제로 하여금 그를 저주하는 형벌을 내립니다.

빠르게 튀는 것도 재주입니다

3. 배신의 카멜레온

스파르타로 온 알키비아데스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곳에 적응합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이처럼 남의 나라 풍속과 습관을 곧바로 자기 것으로 삼아, 카멜레온보다 더 빨리 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재능과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빨리 적응했던지 그는 스파르타의 왕 아기스가 출정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왕비 티마이아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임신까지 시키죠. 왕비는 겉으로는 그녀의 아들을 스파르타의 왕자라고 말했지만 뒤에서는 아기 이름을 알키비아데스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이를 알게 된 아기스 왕은 극대노했죠.

알키비아데스가 떠난 후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에 실패합니다. 애초에 원정을 이끌었던 최고 장군이 자리를 떠난 상태에서 장기화된 전쟁으로 사기와 군량미가 부족했던게 가장 큰 원인이었죠. 이 와중에 알키비아데스는 꾸준히 아테네를 회방하는 공작을 펼칩니다. 아테네에 항복하려는 도시는 막아버리고 이오니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아테네에 반란을 일으키도록 선동했으니까요. 스파르타는 이들과 합세해 아테네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나라에 도움이 됐다고 해도 왕비와 놀아난 인간을 그냥 둘 수는 없었던 스파르타의 왕은 알키비아데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합니다. 이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알키비아데스는 페르시아에 투항하죠. 페르시아로 간 알키비아데스는 총독을 설득해서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이행해 아테네를 정벌하는 대신 둘이 싸우는 걸 구경하면서 어부지리를 얻으라고 설득하죠. 한편으로는 페르시아에 신임을 얻고 스파르타에 복수를 하면서도 아테네가 망해버려서 자신이 스파르타에 잡힐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아테네를 도와 사모스를 전쟁의 위기로부터 구하게 되죠.

적응력은 뛰어나고 봐야합니다

4. 고국으로 그러나 죽음으로

사모스에서 그는 스파르타 군과 싸워 승리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총독에게 자신의 승정보를 알리죠. 하지만 그는 아테네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페르시아 군에 잡혀 죽음을 당할 위기에 쳐하게 됩니다. 그래서 군대를 조직해서 페르시아에서 빠져나와 펠로폰네소스로 향하죠. 그곳에서 그는 또다시 스파르타 군과 몇 차례 전투를 치릅니다. 그리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아테네까지 돌아오게 되죠.

이러한 알키비아데스의 승리 소식은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며 지칠대로 지쳐있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꽤나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항구에 도착했으나 선뜻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알키비아데스에게 화환을 주며 환호로 그를 맞이하죠. 그 날부터 알키비아데스는 재산을 돌려받고 모든 저주에게 자유로운 신분이 됩니다. 아테네 민중은 다시 알키비아데스를 존경했고 그를 통치자로 추대합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아테네의 세력은 그에게 군사 통치권을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당시 군을 통치하고 있던 티데우스는 그의 말을 듣지 않죠. 결국 기회를 노리고 있던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의 군에 의해 아테네는 최후의 패배를 겪고 맙니다. 스파르타에 잡힐 수 없었던 알키비아데스는 다시 페르시아로 망명을 떠나죠. 두 번이나 알키비아데스를 버렸던 아테네 시민들은 후회하지만 이미 전쟁은 끝이나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는 알키비아데스가 살아있고 아테네에 민주주의 정신이 계속되는 한 아테네를 통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페르시아에 비밀문서를 보내 알키비아데스를 암살하도록 시킵니다. 결국 알키비아데스는 페르시아에서 최후를 맞이하면서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하여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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