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달리기 with 김성우

아곤
6 min readNov 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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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형을 만난 건 2017년 10월 어느 유학생 파티에서 였습니다. 저는 그 때 비트코인 백서를 접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앞으로 뭘 할지 한창 고민하면서 여러 커뮤니티를 들락날락 거렸습니다. 당시 성우형도 달리기 클래스를 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무얼 할지 완벽하게 알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파티에서 만나 약간의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 잘은 모르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저는 논스에서 성우형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 때 형은 자신이 케냐에서 달리기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어비엔비를 통해 한국에서 달리기 클래스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달리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달리기에 대해 이야기하던 성우형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저는 형이 달리기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 그 눈빛에 매료되어 달리기 클래스에 참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달리기 세션에 참가하기 위해 여의도로 나가면서 솔직히 괜히 가겠다고 말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게 달리기란 학교나 혹은 군대에서 체력 측정을 위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여기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멀리 달리는게 목표이기 때문에 달리기는 온 몸의 힘을 쥐어짜야 하는 노동으로 전락하곤 합니다. 여의도까지 가는 지하철에서 저는 토요일에 술도 먹었는데 괜히 나가겠다고 약속해서 일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한 시간이나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까지 가는 생고생을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션에 참여하고 나서 달리기에 대한 저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논스 멤버들 그리고 성우형과 천천히 달리면서 본 여의도 공원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제가 그곳을 처음 가봐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만 하늘도 참 푸르고 사람들도 즐거워 보였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이런 공원이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가 달리기를 통해 마치 서울을 처음 와본 사람처럼 신기하기도 하고 즐거웠습니다.

또 달리기를 하면서 성우형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평소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성우형은 제게 자신이 달리기를 하면서 느꼈던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축구 선수로 활동 하다가 부상 때문에 그만둔 이야기, 미국 시골에서 과외를 하면서 광활한 들판을 멘발로 누볐던 이야기, 케냐에서 천천히 달리는 올림픽 선수들의 이야기, 그리고 돌아와서 무리하게 스피드를 냈다가 달리기가 싫어졌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성우형의 삶에 달리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걸 느꼈고 저에게는 노동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던 행위가 한 사람의 삶에 이렇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주 클래스에 참가해서 이 사람이 느낀 경험을 저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성우형이 주최하는 많은 클래스에 참여했습니다. 룰루레몬에서 주최하는 한강변 달리기, 석촌 호수 달리기, 서울숲 맨발 달리기 등 장소와 요일도 다양하고 나름의 프로그램도 다양한 클래스가 있었습니다.

처음 달리기 클래스를 참가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다양한 분들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성우형의 클래스에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이 참여합니다. 한국에 처음 놀러왔는데 에어비엔비 트립에 나온 광고를 보고 달리기에 참여한 여행자와 디지털 노마드부터 시작해서 대학원생,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한국인, 요가와 다른 운동에 관심이 있지만 달리기는 많이 해보지 않은 분들이 모두 클래스에 참여해 주십니다. 이분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경험을 가지고 계신데 달리면서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어디에서도 접하기 힘든 생동감 있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그리고 세션을 참여하면서 점점 더 달리기 그 자체가 좋아지게 됐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금까지 제게 있어 달리기는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즉 체력 검정을 통과하거나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 또는 건강해지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리기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경치를 둘러보는 것이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때문에도 좋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제 몸이 움직이고 호흡하는 걸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데에는 성우형의 세션 진행 방식이 가장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성우형은 세션을 시작하기에 앞서 항상 함께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명상을 할 때 호흡을 느꼈던 것처럼 달리기를 하면서도 호흡을 계속 관찰하라고 말합니다. 명상을 할 때 호흡을 관찰하는 이유는 어떠한 감각이나 생각에 빠져서 자신을 잃어버렸을 때도 호흡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다시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달리기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달리다가 지치고 힘이 빠지더라도 호흡이라는 중심만 잡고 있으면 자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달리기가 노동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어쩌면 제 호흡을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달리는 제 자신을 관찰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달리기 위해서 힘을 내야 한다는 생각은 했어도 달리기를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어떨지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지 그리고 숨을 코로 쉬는지 입으로 쉬는지 이런 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달리기를 함에 있어서 언제나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야 했고 한번도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우형은 달리기를 하면서 호흡 외에도 자세와 어깨, 보폭과 빠르기처럼 자신의 달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몸의 요소를 알려줍니다. 특히 일요일에 서울숲에서 맨발 달리기 세션에 참석하시면 자신이 달리는 모습을 슬로우 비디오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 자신을 찍는다는 사실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는데 막상 빨리 뛰기 위해 애쓰는 제 모습을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달릴 때마다 약간 몸이 붕 떠있다는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천천히 달릴 때는 다리가 무겁고 걸음을 뗄 때마다 쿵쿵 너무 무겁게 내려찍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석촌 호수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성우 형이 제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더 빠르기를 올려 보는 건 어때? 속력을 올릴 필요는 없지만 다리의 움직임을 더 빨리하면 너한테 편할 것 같아"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 조언대로 했더니 정말로 무겁다는 느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마치 레이싱카가 트랙에 납작 붙어 타이어가 착 감기면서 운전하듯 매끄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 주 전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7.5km를 달려보았습니다. 석촌호수에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뛰는 세션이었는데 호수를 3바퀴나 돌았던 것입니다. 달리기를 즐겨본 적이 없는 제게 있어서 굉장히 큰 성과입니다. 언젠가는 하프 마라톤이나 풀코스 마라톤도 도전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뭐 그런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언제든지 달리면서 내 몸과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만족스럽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기회를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성우님의 명상 & 달리기 세션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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