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학교 리덕 면접을 마치면서

아곤
3 min readJun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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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보면 흔들리는 순간이 많다. 몇 번이나 엎어지면서도 정말 어쩔 수 없이, 나에게 주어진 숙명인 양 다시 하게 되는 일임에도 굉장히 사소한 부분에서 무언가 틀어질 때조차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 합의된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 팀원을 설득하는게 힘이 들 때, 아니면 그냥 주말에 나와 우두커니 비어 있는 살롱을 혼자 청소할 때면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예전의 실패를 곱씹으면서 “과연 내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자신감 없는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때 나를 잡아주는 건 순간순간의 결과물이다. 내가 몇 주전에 했던 이야기를 팀원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 누군가 나를 인정해줄 때, 그래서 만족할 정도의 가능성이 보였을 때 희열을 느낀다. 지난 3주간의 강사 면접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하나같이 보물 같은 분들이 면접장을 찾아주셨고 그들의 스토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많은 위안을 얻고 스토리에 감명했으며 덕후학교가 잘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얻었다.

희망의 날개짓이 시작된 것만 같다

면접은 지난 3주간 매주 토요일 2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었다. 2시, 3시반, 5시 타임 별로 3명의 면접자와 1시간씩 대화했다. 공식적으로 준비한 질문은 5개였지만 개인의 스토리에 따라 유동적으로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7~8개 이상의 질문을 했다. 처음 2주간은 서기로서 마지막 주에는 메인 면접관으로서 면접을 진행했다.

다른 것 다 필요없이 그냥 너무 즐거웠다. 세상에 이런 덕후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심장병 수술을 받기 전에 유서를 쓰다가 정말 내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법학을 떼려치우고 사진 작가로 전향하신 분이나 40살이 되기 전에 고기집 사장님이 되고 싶어 월급의 1/3을 고기 굽는 방법 연구에 지불하는 의사, 집안의 구마의식이 싫어서 반종교의 길을 걷다가 문화로서의 종교와 오컬트를 공부하는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생까지 그냥 듣기만 해도 “미쳤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덕후학교 리덕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표정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나름 재미난 인생을 살았지만 이들처럼 불타오르게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었는지 반성해보게 되었다. 나는 참을성이 높은 편이 아니다. 매번 흔들리고 옮겨간다. 내가 커뮤니티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아직 내가 진정으로 정착하고 싶은 곳을 찾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앞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이 사람을 보면서 나는 희망을 얻었다. 용기를 얻어 다시 한 번 도전할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더 빛나서 세상을 비춰주면 나처럼 용기를 얻는 사람이 많아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난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다고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웃을 수는 있을 것이다. 웃으면서 일해야겠다. 내 주위의 환한 이들이 더 빛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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