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스로 오는 길에

강남역 2호선에서 4번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 신분당선 타는 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이따금 할머니 한 분께서 계단 한 켠에 기대어 껌을 팔고 계십니다. 저는 논스로 가는 길에 자주 그 할머님을 뵙게 되고 그 때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껌을 하나 팔아드려야 하나 생각하곤 합니다. 예전에 한 두번 와우 한 개를 팔아드렸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죄책감 없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님을 일부러 외면하며 지날 때면 그 날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맹자의 이루장구 하(離婁章句 下) 2편 혜이부지위정장(惠而不爲政章)에는 정나라의 정치인인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자산은 수레를 타고 강을 건너려 하고 있었는데 강가에 할머니가 강물을 건너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마침 그 날은 비가 온 이후라 물이 불어 있어서 다리가 잠겨 있는 상태였고 이 때문에 할머님 혼자 강을 건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산은 그 노인을 안쓰럽게 여겨 자신의 수레를 내주어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자산이 어진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오히려 자산을 두고 “정치를 할 줄 모른다"고 꾸짖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다리를 놓아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지 한 사람을 위해 수레를 내어 주고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산은 할머님을 공경하는 인정 많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야 할 정치인으로써의 도리를 다하지는 못했다고 말합니다.

아마 제게 주어진 문제도 같은 방법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할머님의 껌을 사드린다면 할머님께 천원 이 천원을 보태 드릴 수는 있겠지만 할머님은 여전히 차가운 바닥에 앉아 장사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아예 오늘 팔 껌을 모두 사드린다면 오늘 아니 앞으로 며칠 간은 장사를 하지 않으셔도 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신분당선을 찾으셔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예 다달이 제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할머님을 위해 후원해 드린다면 이제부터 그 할머님이 강남역 신분당선을 찾을 일은 없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는 그 할머님이 아닌 누군가가 다시 차가운 계단 한 켠에서 껌이 아니면 조그마한 종이 박스를 앞에 두고 황망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생각하는 문제의 본질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거리로 내 앉는 현실이라고 한다면 제가 그 할머님께 어떤 도움을 드린다고 해서 그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려운 것은 저는 아직 정치인도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분당선의 할머님이나 강남역 외에도 많은 지하철 그리고 거리에 계실 노숙자 분들, 지극한 연세에 눈이 침침해서 GPS지도가 보이지 않으신 택시 기사님들, 또 더 나아가 시켜주기만 하면 득달같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직장을 찾지 못해 하릴없는 푸른 한숨을 내뱉는 청년 “레디메이드 인생"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겨우 직장에 취직했지만 막상 들어가서 커피 심부름과 문서 세절만 하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도 이것을 시행할 능력도 없습니다. 노후가 되었든 복지가 되었든 많은 정책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불행하다면 과연 이것이 정치로 해결할 수 일인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는 너무 복잡하기만 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건 문제가 복잡하다고 해서 피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후일에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때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제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어 보입니다. 저는 문제의 한 부분을 과장해서 해석하거나 틀에 갇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지금까지 만들어진 해결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새로운 기술을 공부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에 대해 혁신이나 혁명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아마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 그 자체는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어떠한 가치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기술도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준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불거지고 있는 무분별한 투기에 관한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욕망의 문제가 이 새로운 기술에도 투영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삶의 가치가 어떻게 돈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지를 자주 목격하곤 합니다. 실제로 집 문제, 차 문제, 노후 문제를 비롯해 생활 전반의 모든 문제는 돈 문제로 귀결되곤 합니다. 그래서 암호화폐는 그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투기의 수단이 됩니다. 이 때 암호화폐의 가치는 지금까지의 돈에 대한 우리의 욕망의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디지털 덩어리일 뿐입니다. 여기는 혁신도 기술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돈에 대해 가지는 욕망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상을 원합니다. 새로운 기술의 사용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이루어 줄 수 있으려면 지금까지 우리가 가진 욕망 이상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의 가장 큰 가치는 다른 모든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점입니다. 또 돈이라는 그릇은 서로 다른 가치를 교환할 때 매개체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즉 돈은 그 안에 어떤 가치가 담겨 있는지 또 우리가 어떤 가치와 교환하고자 하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 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암호화폐라는 새로운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가 인간으로써 갖춰야할 가치를 담아내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암호화폐는 단순히 물리적인 종이로 표현된 화폐를 컴퓨터 상의 디지털로 데이터로 옮기는 작업을 넘어 디지털 상에서 인간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담아내고 이러한 가치의 교환을 통해 가치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기술만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기술이 담아내는 가치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전유물이 아닌 인간의 삶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강남역 4번 출구를 나와 논스로 가는 길에 저는 다시 한번 신분당선에 입구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은 많이 했지만 아직까지 이룬 것은 없어 제가 현실적으로 할머님을 위해 해드릴 수 있는 건 그저 껌을 한 통 사드리는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맹자의 이야기를 한 것도 암호화폐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는 의지도 모두 핑계는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것도 아니면 제가 그냥 쓰잘데기 없는 고민을 너무 심각하게 하는 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아직 답은 정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오늘도 논스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이 글을 써 내려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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