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 3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죽음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른 어떤 작품에서처럼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묻기 시작한다는 건 죽음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 반증할 뿐이다. 단테조차도 지옥을 헤매일 때 살아있는 상태였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극적인 표현을 선호하는 시인은 “이것이 현실인가 환상인가?”라며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이는 수사적인 표현일 뿐이다. 아마 시라는게 쓸데없이 아름답고 모호하게 진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그 반대였나? 쓸데없이 진실하고 모호하게 아름다운 건가? 실은 잘 모르겠다) 생각이 청아하게 굴러가는 소리에 궁금증이 반응하는 순간 그건 살아 있는 것이다.

사후 세계에서 일어난 단테조차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머리의 구멍을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최소한 총알이 성공적으로 머리를 관통 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의문은 남아있었다. 내가 살아 있으니까.

‘젠장, 난 이런 거 하나도 제대로 못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 못다한 작업을 끝 마치려 했지만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아주 대~단 하구만’

나는 나의 위치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방 안에 거울이라도 없었으니 망정이지 모습이 비쳤다면 진짜 쪽 팔렸을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머리에 커다란 구멍을 자랑한체로 죽지도 못한 나의 상태… 좀비도 머리에 총을 맞으면 잘만 죽던데 나는 왜 죽지도 못했을까?

좀비 = 헤드샷 정도는 국룰인데,,, 규칙을 어겨 버렸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최근 유행하는 뇌과학적인 관점으로 분석해야할까 고민해봤다. 뇌과학자들은 인간이라는 현상을 집약된 하나의 기관 즉 “뇌"라는 기관과 이의 작용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들의 노력은 뇌를 연구하여 인간에 대한 몇 가지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인간의 뇌가 몸의 다양한 기관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인지적 행위를 영위할 때 인간의 뇌가 사용된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인간의 기억이 이 뇌라고 불리우는 쭈글쭈글한 영역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러한 발견은 그저 인간의 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뇌라는 기관이 몸의 다른 모든 기관처럼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뇌가 인간 존재의 중심이라는 증거로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뇌라는 건 신호등과 신호가 오가는 횡단보도처럼 보인다. 길이란 누가 거리를 걷고 있느냐에 따라 특별해 보이기 마련이다. (갑자기 비틀리즈가 아비로드를 걸어가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 자체로는 별 멋이 없다.

조금만 정리하자면 내가 생각할 때 뇌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뇌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생각이 뇌라는 기관을 지나치는 것이다. 마치 시각이 눈을 통해 지나쳐 오듯이. 보는 건 눈이 아니다. 보는 것은 나이다. 이처럼 뇌가 시각에 서 작용한다는 사실은 그저 몸의 일부로서 뇌가 시각 작용에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만을 의미한다. 보는 것은 뇌가 아닌 것이다.

생각은 뇌라는 횡단보도를 건넌다. 비틀즈처럼

그리고 뇌라는 기관에 나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이걸 날려버리고 싶어지게 만든다. 가능하다면 이 망할 기관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서라도 나의 기억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게 만들고 싶다. 수치와 공포. 기억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지금처럼 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상황에서도(그리고 아마 뇌까지 구멍이 확장된 상황에서도) 지우고 싶은 기억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나는 나의 몸 그 어떤 부분도 통제하지 못하는가보다. 또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걸 보니 어쩌면 뇌라는 이 기관도 어쩌면 나의 중심이 아닐 뿐만 아니라(중심이라면 최소한 나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안의 이질적인 물체 중 하나일 뿐이었던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는 나의 몸 중에 통제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심장 박동이나 숨을 쉬는 것도 배고픔이나 목마름은 물론이고 돌아다니는 혈액 순환도… 살면서 단 한 순간도 나에게 붙어 있다는 사실 말고 몸뚱아리를 이해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어차피 내가 통제하지도 못했던 몸의 몇 가지 부위들이 기능을 멈췄다고 내가 죽는 건 아니라는게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몸이란게 나에게 이질적인 객체에 불과했을 수도 있으니까. 몸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라는 것도 통념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 “나라는 건 도데체 뭘까?”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알았다면 자살을 택하지 않았을테니 이 질문은 무의미하다.

생각에 생각을 꼬리를 물어봤자 고민의 답은 나오지 않는다. 나의 지속적인 존재의 이유는 알 수 없으니까. 실은 내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제 뭐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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