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권위에 의해 발생하는 암묵적 혹은 가시적 폭력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물론 사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직업의 구분이 필요하고 그 직업 내에서도 잘함과 못함에 따라 신뢰할 수 있는 이와 신뢰할 수 없는 이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구분에 따라 제공되는 권위와 경제적 유인이 달라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물리적 힘이나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지위 고하에 따른 구분이 차별로 이어지면 차별로 발생하는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야기하게 됩니다. 이 경우 필요에 의해 발생한 권위가 차별과 폭력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낳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고착화 되어 폭력이 당연한 현상으로 치부되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모두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합니다. 이 때 피해자는 누구에게도 호소할 곳이 없는 폭력이 당연한 사회가 탄생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사는 이유가 폭력과 차별을 조장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나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서 문제점을 제기하고 사회를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고착화된 문화를 바꾸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그 과정에서 초기의 논지가 흐려지면서 다시 대립과 마찰을 반복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어떠한 계기가 없이는 잘 바뀌지 않는 것이 사람인지라 아무리 상황이 순탄할 때는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타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계기가 있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 때문에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새로이 발현한 암호화폐와 그 기반 기술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암호화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신뢰 기반이 중앙화된 기구에서 시작하여 그 기구의 허락을 통해 신뢰가 확장되는 형식을 띄고 있었다면 새로운 탈중앙화 형식의 조직은 작업증명을 통해 자신의 산물을 도출하고 이를 모두가 검증하고 인정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합니다. 이러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작업을 허용하는 네트워크(문화) 기반과 서로의 소통을 통해 서로를 검증하는 노드(사람)가 필요합니다. 궁극적으로 저는 새로운 탈중앙화 형식의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 문화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기술이 얼마나 도입 가능한지 그리고 기술의 도입이 과연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암호화폐와 그 기술을 상용화하는 수준까지 발전시키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직 확장성(Scalability)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암호화폐로 모든 지불이 가능한 무지개 빛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허황된 꿈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기술을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맞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설득을 위해서는 암호화폐라는 도구를 통해 개인이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이윤이나 물리적 효용성을 넘어 지금까지 사회에 산재한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직까지 인간 역사에서 대규모로 탈중앙화된 조직을 구현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러한 작업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이 작업은 지금까지 당연시 되어왔던 개념을 정립할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암호화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질문의 답을 도출하기 위해 기존 개념과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고 이를 적용하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는 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글을 적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과정이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제게 지금 당면한 가장 큰 숙제는 과연 제가 느끼는 재미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입니다. 그런데 제가 법과 규제라는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는 점과 굉장히 딱딱한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과연 누가 이걸 재미있게 읽어줄까 하는 고민이 남습니다. 아직은 필력도 부족하고 공부도 부족해서 지금 이상으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괴감이 들기는 하지만 더 쓰다 보면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늘도 새로운 글을 올려봅니다. 만약 한 명의 독자분이라도 제 글을 통해 의미를 찾아주신다면 제게는 크나큰 영광일 것입니다.